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숨부터 들이마셨다. 따뜻하고 달큰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공기에서 향기가 났다. 처음 맡는 냄새인데, 왠지 낯설지 않았다. 하와이 꽃 향기일까. 택시를 기다리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공기를 마시고 또 마셨다.
하와이에 처음 여행 오신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셨다.
“눈이 뿌옇게 보이는 게 내 눈 때문인 줄 알았어. 근데 하와이에 와보니까 이렇게 맑구나. 어릴 적 살던 동네 공기랑 참 비슷하네.”
아버지는 그날 내내 추억에 잠기셨다. 맑고 촉촉한 공기를 마시던 어린 시절. 먹먹하면서도 기뻐하셨다. 이 공기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한국에서의 삶은 늘 먼지와의 전쟁이었다. 집 밖에는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아래 한두 시간만 바깥에 있어도 가슴이 답답해왔다. 아침에 아이들 마스크를 깜빡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들의 여린 폐가 걱정이었다. 코로나 전인데도 미세먼지 때문에 쓰던 마스크를 썼다.
집 안에는 집먼지로 힘들었다. 큰아이는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로 아토피가 있었고, 둘째는 겨울 내내 코감기로 고생했다. 그러다 보니 청소나 정리는 서툴러도 먼지에는 민감했다. 피곤해서 청소를 하루만 미뤄도 아이가 아팠다. 아프면 또 후회했다.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늘 무거웠다. 미세먼지로 환기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다.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한국의 12월 중순 겨울에 하와이에 도착했고 더 이상 마스크는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 먼지가 없지는 않았다. 아침에 닦아도 오후에 금방 먼지가 쌓였다. 일주일쯤 청소를 안 하면 마룻바닥에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방충망 안쪽에도 먼지가 보였다. 바람이 통과하면서 먼지를 집 안으로 몰고 온 듯했다. 맑은 공기와 먼지가 함께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와이는 바람이 강해서 바깥 먼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가는 모래일 수도 있고 화산섬 풍화되어 날아오는 먼지일 수도 있다. 화산재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아침마다 유난히 콧물이 심했다. 재채기도 했다. 그래도 오후만 되면 괜찮았다. 심각한 비염은 아닌 것 같았다. 약은 먹이지 않았고 청소만 부지런히 했다. 그 정도면 양호했다.
하와이는 바람이 많았다. 특히 무역풍이 불어오는 방향인 동쪽 바람은 밤에도 쉬지 않았다. 첫 집에선 바람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태풍처럼 창문이 흔들리고, 유리가 깨질 것처럼 진동했다. 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가 무서웠다. 혹시 깨진 유리창에 아이들이 다칠까 봐 몇 날 밤을 설쳤다. 창문에 신문지를 붙일까 생각도 했는데 하와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오래된 콘도여도 낡고 오래된 창틀과 창 그대로였다. 깨지지 않는 튼튼한 유리인가?
두 번째 집에 가서야 하와이 집 창 틈으로 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와이에는 독특한 창문이 있었다. 얇고 긴 유리창이 블라인드처럼 겹쳐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바람을 완벽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치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지혜였다. 바람을 피하는 대신, 바람이 지나가도록 창문을 열어두기. 하와이 창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약속 같았다.
비를 대하는 자세도 그랬다. 하와이에선 비를 피하지 않았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도, 사람들은 우산을 펴지 않았다. 우산을 펴도 바람 때문에 소용없이 비가 들이쳤다. 잠시 건물 아래 비를 피하면 대부분 비는 금세 그쳤다. 그리고 다시 걸으면 이내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 주(Rainbow State)’라는 별명답게.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날, 장대비가 쏟아졌다. 며칠째 비 한 방울 없었기에, 우리는 그 비를 기다렸다. 대지와 나뭇잎도 애타게 기다렸을 비.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물었다.
“엄마, 우리 빗속에서 뛰어놀아도 돼?”
잠깐 망설였다. 어릴 적 나는 비를 맞으며 놀았지만, 아이들에겐 한 번도 허락해 준 적 없었다. 감기 걸릴까 걱정됐고, 아이가 아프면 직장도 곤란해졌다. 우산을 못 챙겨줘 비에 젖은 아이를 볼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여기선 달랐다. 매일 수영도 하는데, 빗물 좀 맞는다고 큰일이 날까. 집에 가서 금방 씻으면 되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으니, 비도 깨끗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괜찮아. 어서 뛰어놀아. 공기도 깨끗하니 비도 괜찮을 거야. 여기선 비 맞아도 돼.”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빗속으로 달려갔다. 맑은 물방울이 아이들의 웃음 위로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그냥 맞았다. 우산은 가져가도 잘 쓰지 않았다. 하와이 사람들처럼,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면 비는 지나갔고, 어느새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하와이 삶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었다. 바람을 이해하고, 비를 피하지 않고, 공기를 들이켰다. 아이들도 자연을 닮아갔다. 더 이상 비에 젖는다고 투덜대지 않았고, 바람에 문이 덜컹거려도 겁내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앞으로 인생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피해야 할 때는 피하더라도 맞아야 할 때는 겁내지 말아야지.
하와이에 살아서 다행이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하루하루가 행운이고, 이 삶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숨 쉬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