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사랑의 인사말
“알로~~~~~하!”
하와이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다. 낯선 이에게도 따뜻하게 건네는 그 한 마디.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고마워요’라는 뜻을 품은 인사지만, 실은 그 이상의 말이다.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는 ‘알로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알로하는 하와이 사람들이 생명을 인식하는 방식이며, 모든 생명 안에 깃든 정신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을 담아 나누는 마음. 알로하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그들의 숨결이자 철학이었다.
“문화를 모르면 제대로 언어를 배울 수 없다.”
카피올라니 대학 글쓰기 수업 교수님이 늘 강조하셨다.
처음에는 영어만 배우려고 시작한 하와이 생활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하와이어까지 배워야 하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지만 배울수록 하와이어 단어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매력에 빠졌다.
하와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단지 육지 위의 섬에 사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에만 보이는 땅이 아닌 깊은 바다 면적만큼 넓은 세계를 뜻하는 '오세아니아'의 사람이다. 드넓은 태평양을 품은 민족, 바다 위를 자유로이 항해했던 진정한 뱃사람이었다. 멜라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로 이어지는 오세아니아의 한 축이자, 기개와 탐험정신을 가진 이들의 후손, 그들은 바다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 하와이는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으며 아픔을 겪었다. 미국의 영토가 된 뒤에는 하와이어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언어를 잃는다는 건, 곧 문화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와이 사람들은 그 정신만은 놓지 않았다. 폐쇄된 섬 니이하우에 남겨진 언어는 다시 부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같은 아픔이 있어 그 의지와 필요성이 공감되었다.
무엇보다 ‘알로하’는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빛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카피올라니 대학 북쪽에 위치한 ‘말라가든’에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하와이 토종 식물을 돌본다. 외래종으로부터 위협받는 자연을 지키는 일은 곧 사람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나’는 하와이어로 땅이자 가족이다. 혈연을 넘어,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가족이라 부르는 그 시선이 따뜻했다. 하와이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건넨다. 그 안엔 ‘당신도 나의 아이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말린 나뭇잎을 선물로 받았다. 하와이 토종 식물로, 차를 우리면 기관지에 좋다고 했다. 몇 달 뒤, 큰 아이가 폐렴에 걸렸을 때 반신반의하며 얼려주었던 잎을 꺼내 차를 조심스레 우려 주었다. 아픈 아이는 거부하지 않고 틈틈이 차를 마셨다. 병원 약으로도 차도가 없어 보였는데 거짓말처럼 기침이 잦아들었다.
그건 하와이 자연이 우리 가족에게 건넨 첫 번째 ‘알로하’였다.
그때, 하와이로 향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난 유학. 낯선 땅에서 고단한 날도 많았지만, 하와이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괜찮아, 너답게 살아도 돼.”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 게으를 자유, 아이를 언제든 마음껏 안아줄 여유, 눈을 깊이 마주할 수 있는 오늘. 그 모든 것이 ‘알로하’였다.
직장 경력에는 공백이 생겼지만, 내 인생에는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하와이에서 만난 샐리 언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우리나라 속담,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나는 하와이 식으로 이렇게 해석한다.
"알로하를 베풀면 알로하가 돌아온다."
가끔은 마음을 나눴는데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끼리는 그런 사람을 ‘싸가지안’이라 불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하와이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내 주변은 알로하로 가득한 사람들만이 남았다. 그 따뜻함이 우리를, 그리고 내 아이들을 지켰다.
지금도 ‘알로하’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건 단지 하와이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조건 없이 베풀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하와이는 그런 삶을 알려주고 다시 나누라고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