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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뚫고 할매, 할배 날다

부모님이 하와이에 오시다

by 만석맘 지은

아니 안 보이시네, 대체 어디 계시다는 거야?”

공항 도착 시간은 이미 한 시간 전. 로밍도 했고, 분명 도착하셨다는데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카카오톡도 묵묵부답. 괜스레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며 애태웠다. 낯선 땅에서 두 분이 헤매고 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버지와 전화 통화가 되는 남편이 겨우 계신 곳 사진을 받아 보내줬다. 몇 바퀴를 돌아도 안 보였는데, 도로변이 아닌, 안쪽 벤치에 앉아 계셨다.

엄마, 아빠!”

손 흔드는 딸을 발견하고 나서야 두 분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준비한 레이를 걸어드렸더니 미리 연습한 하와이 인사, 샤카를 날리셨다.


생각보다 쉬운 입국 심사


부모님 오시기 이틀 전까지 기말고사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과 집 안 살림. 하루 만에 폭풍 청소, 장보기, 주유까지 마쳤다. 부모님이 오신다니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백신 확인증이나 서류 등 부모님이 준비하기 복잡한 출입국 과정을 일일이 챙겼다. 입국심사 준비로 유튜브 영상도 보내드리고, 예상 문답도 영어와 한국어 발음을 써서 보내드렸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하우 롱~?”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투 윅스!”라며 대답하셨고, 심지어 입국장에서 헤매는 다른 한국 할머니까지 도와드렸다고 으쓱해하셨다. 처음으로 두 분 만의 해외여행.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준비했는데 우리 아빠 대단하다고 칭찬해 드렸다.

첫날, 완벽 시차 적응

시차도 잊은 두 분은 도착 첫날부터 에너지가 넘쳤다.

복잡한 와이키키 시내를 살짝 지나 내가 아끼는 조용한 해변으로 향했다. 먼바다에 서퍼 몇 명과 관광객 몇 명뿐.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다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아이들을 데리러 나섰다. 아이들과 동네 쉐이브 아이스 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만난 손녀와 장난치며 드시고는 너무 달고 차가워 몸서리치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석양을 보기 위해 탄탈루스 전망대로 향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허둥지둥 전망대까지 뛰었는데 금방 비가 그치고 쌍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 만에 보는 쌍무지개냐!”

어릴 때 보던 무지개와 하늘 빛깔을 여기서 보니 너무 좋고 신기하다고 좋아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딸의 솜씨 없는 밥상도 맛있게 드시고 “우리 딸 음식 솜씨가 많이 좋아졌네.”하셨다. 집 안으로 불어 들어오는 시원한 하와이 바람을 느끼며 하와이 맥주를 마시며 수다쟁이 손녀들과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나도 그들의 아이


하와이에 몇 년을 살면서도 해변에서 바비큐를 못 했다. 부모님 오시면 같이 해보려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처음이라 불 붙이는 것조차 서툴렀다. 아버지가 이건 내가 전문이지.”라며 나섰고, 엄마도 집게를 뺏으셨다. 그렇게 두 분이 손발을 맞춰 금세 맛난 바비큐가 완성되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보살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아이였다. 든든하게 내 곁에 두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아이들도 할배, 할매의 경상도 사투리에 깔깔 웃었다. 삼대가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부모님을 위한 특별한 준비


부모님을 위한 특별한 일정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어릴 때도 방학에는 바다보다 산으로 향했다. 아무리 하와이 와이키키가 좋다지만 딸을 보러 오셨을 뿐, 다른 관광객들과 다른 일정이 필요했다.

먼저 마노아 폭포 트레일에 들렀다. 영화 아바타에 나올 것 같은 원시림 속을 걷고, 이름 모를 꽃과 커다란 고사리에 감탄하셨다. 살짝 땀이 나는 산행을 마치고 근처 현지인 포케 맛집과 숲 속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즐겼다.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은 북쪽 노스쇼어 근처에 있는 와이메아 밸리 문 워크. 여름시즌 한시적으로 개장하는 야간 산행이었다. 가로등도 없이 달빛이 비추는 밤, 두 팀으로 나누어 조용히 각자 발소리에 집중하며 깜깜한 산길을 조심히 걸었다. 처음 듣는 새와 동물 울음소리, 조금 오싹하면서도 자연과 연결되는 새롭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코로나로 수년간 미뤄졌던 여행. 부모님은 긴 기다림 끝에 내가 가장 익숙한 시기,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하와이에 오셨다.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것만 보여드리고 나눌 수 있었던 시간. 완벽한 순간을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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