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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여행의 절정, 마우이섬

by 만석맘 지은

“마우이나 빅아일랜드도 한번 가보고 싶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아버지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우리 아버지다. 하와이 오시기 전부터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지며 가고 싶은 곳을 정리하셨단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도 여전히 여행 준비에 철저하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지만, 아버지는 늘 한 수 위다. 놀라운 정보력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미 아이들과 빅아일랜드는 두 번이나 다녀왔던 터라, 우리도 아직 가보지 않은 마우이로 정했다. 한인 도서관에서 마우이 여행책을 빌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3일 일정에 맞춰 꼭 가보고 싶은 세 곳—할레이칼라, 하나로드, 블랙락 비치—를 정하고 자세한 최신 정보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얻었다.


해가 지는 하늘, 할레이칼라


마우이에 도착한 첫날, 공항에서 렌트카를 픽업하고 마트에서 간식과 물을 산 뒤 바로 할레이칼라로 향했다. 해발 3,000미터, 마우이를 대표하는 국립공원. 새벽 3시에 출발해 일출을 보는 것이 명물이라지만, 낯선 도로를 야간 운전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신 일몰을 선택했다.

하늘을 향해 차를 몰며, 낮에 출발한 것이 신의 한 수였음을 곧 알게 되었다. 흔한 난간도 없는 가파른 도로 옆은 낭떠러지. 가족들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신선이 된 냥 탄성을 질렀지만 내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서너 시간을 운전했을까. 정상에 오르자 구름 위로 떨어지는 작고 붉은 해가 우리를 맞이했다. 빛이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숙소에 돌아와서 집에서 싸온 김치와 라면,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맛은 진정 꿀맛이었다.

천국과 황천의 경계, 하나로드


둘째 날은 하나로드 드라이브.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답게, 해안 절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엔 조건이 따랐다. 차량 두 대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아슬아슬한 커브길, 반사경도 없는 굽이친 길이었다. 데이터도 끊어져 부정확한 구글 지도 상 점으로 표시되는 외진 도로.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전 날 할레아칼라 도로는 양반이었다.

그래도 역시 천국은 천국이었다. 오아후 동부 해안도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나로드는 아름답지만 거칠고 매혹적인 자연 그 자체였다. 숲을 지나 바다가 나오고, 다시 깊은 계곡이 등장하는 다양한 도로의 향연이었다.

하나로드 끝자락에 있는 ‘훌리훌리 치킨’ 식당을 발견하자 구름 위 신선놀음을 하다 갑자기 속세로 내려온 기분이었다. 데이터도 켜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8시간을 운전했던 하나로드. 다시 갈 자신은 없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거북이와 조우한 블랙락 비치


마우이 여행 마지막 날은 마우이 서쪽의 블랙락 비치. 오아후 와이키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해변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백사장, 바다거북이와 함께 수영하는 사람들.

설마 했던 거북이가 방향을 틀어 내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스노클링하다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지만, 그 순간조차 황홀했다.

렌트카를 반납하러 가는 길, 느릿느릿 움직이는 여행사 버스 덕에 겨우 시간 맞춰 도착했다. 공항에선 여유롭게 칵테일 한 잔으로 마우이 여행을 마무리했다.


헤어짐


마우이 일정을 마치고 이틀 후 부모님은 한국으로 떠나셨다.

돌아가는 길, 입국 서류를 대신 입력하며 애써 웃었지만, 두 분이 활짝 웃으며 출국장으로 걸어가는 뒷 모습에 울컥했다.


남들처럼 고급 호텔에 묵은 것도 아니었다. 비싼 스테이크도 대접 못 했다.

부모님은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해변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 아이들의 학교 공연과 발표를 보여드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부모님은 행복하셨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순간은 언제나 새로웠다. 비록 부모님 건강이 예전만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건강하실 때 매번 새로운 일정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길을 만나며 우리만의 하와이를 만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길, 작은 해프닝에도 즐거웠다.


“와줘서 고마워요, 엄마 아빠.”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웃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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