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하와이 여행기
“우리 때문에 고생할 거니까.”
부모님이 떠나신 지 이틀 뒤, 한국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금일봉을 내놓았다. 고무장갑이며 먹거리도 부탁했는데. 거절해도 주머니에 구겨 넣을 것을 알기에 고맙게 받았다.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라면, 반찬도 싸들고 왔다. 이만하면 가족이다. 아니, 사랑이다.
“언니 집에서 며칠만 묵으면 안 돼요?”
여행 계획 세우면서 동생 같은 지인이 애교 섞인 부탁을 했다. 엄마 둘과 중학생 아이 넷.
방 하나, 거실 하나인 우리 집. 화장실도 하나였다. 17평 밖에 안 되는 우리 집에 묵어도 괜찮을까? 내가 힘들면 호텔로 간다면서도 우리 집에 오고 싶은 눈치다.
틀림없이 호텔은 비싸고, 수영 뒤 빨래가 문제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다만, 사춘기 아이들이 어떨지.
아이들 어릴 때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던 이력이 있는 사이였다. 그때도 신랑 한 명 없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한 명은 아이 씻기고, 한 명은 밥하고, 한 명은 놀아주고. 전생에 가족이었나 싶을 만큼 자연스러운 호흡이었다. 그래서 오라고 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랬다. 아홉 명이 함께였지만 큰 소리 한 번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도 불편하지 않았다. 꼭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물 흐르듯 잘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모, 배고파요!”
가장 무서우면서도 반가운 말이었다. 잘 노는 만큼 잘 먹었다.
사춘기라더니, 엄마에게는 렌즈 찾아 달라, 옷 갖다 달라 성가시게 굴면서도 서로 챙기는 모습이 다정하다. 남자아이 하나라고 오히려 더 챙긴다. 아이들은 거실에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잠들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흥부네 아이들처럼 빼곡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럽기는 엄마들도 엄마들도 만만치 않았다. 엄마들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움직였다. 우렁각시가 따로 없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빨리 되는 세탁기랑 건조기 있으면 좋겠어. 언니집이 너무 좋아요.”
호텔보다 우리 집이 낫다는 말에 슬며시 흐뭇해졌다.
차는 한 대, 일행은 아홉 명. 이동할 때 반은 우버를 탔고, 고등학생 딸이 가이드를 자처했다.
처음 우버 탈 때 여행객의 들뜨는 분위기에 기사 아저씨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음악 볼륨을 높이고 함께 춤추며 왔노라고 딸이 상기되어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에서 딸은 점점 든든한 안내자가 되었다. 아이들끼리 버스를 타고 알라모아나센터와 와이키키를 누비기도 했다.
급기야 예비로 예약했던 호텔도 자신들끼리 묵겠다며 ‘엄마 없는 여행’도 했다. 어느새 아이들도 자라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엄마들에게도 짧지만 소중한 여유가 생겼다.
집에서 내려 마신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도 꿀맛이었다. 노을 맛집 우리 집에서의 칵테일 한 잔도 훌륭했다. 그래도 여행은 여행. 산속 한적한 커피숍도 가보고 마사지샵에서의 전신 마사지, 일본 선술집에서의 사케 한 잔의 작은 행복도 누렸다.
친구들은 언니 고생한다며 금일봉도 내놓았는데 스테이크도 먹자고 했다. 미안하면서도 고사할 수 없었기에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꺼내 입었다. 고급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했다. 아이 낳고 이렇게 호사스러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오랜만에 자유의 기분에 취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였다.
알로하 타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크루즈를 발견했다.
“곧 배 떠나요! 모두 카마아이나 디스카운트(거주민 할인) 해드릴게요.”
한국을 좋아한다는 직원의 말에 솔깃해 급히 탑승했다.
웰컴 드링크 한 잔에 기분이 좋았다. 모두 태평양 위로 천천히 가라앉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 위에서의 순간은,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9명 여행 추억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았다.
방학이라 비어 있던 지인 집에 묵으면서 수영하며 바비큐 파티도 하고, “사랑스러운 너희 아이들 최고야.” 극찬하던 현지인에게 처음으로 서핑도 배웠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작은 사고도 있었다. 하와이 바다에서 해파리에 스쳐 부어오르기도 하고, 배탈과 몸살이 나기도 했다. 마지막 묵은 호텔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무릎이 다 까지기도 했다. 탈도 많았지만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많이 쌓였다. 12일간, 매일이 소중한 추억이었다.
“바이 바이! 각자 또 열심히 살다, 한국에서 보자.”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선 우리. 북적이던 우리 집이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하나도 안 힘들고 즐겁기만 했던 여행.
함께였기에 가능했고, 함께였기에 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