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숙제
게으르다, 게으르다...
하와이 살 때만큼은 재미가 없긴 했다.
그래도 뉴욕도, 시카고, 토론토도 다녀오고
미국 오고 재미있는 것도 많았는데,
영 예전같이 글로 남길 마음이 쉽사리 안 생겼다.
한 푼의 수익도 없는 쓰기가 이제 흥미가 없어졌는지,
이제 블로그 글보다 유튜브나 인스타가 대세인 시대에
예전만큼 댓글이나 응원이 없어서인지,
그냥 좀 쓰기가 싫었다.
갱년기의 우울함이 한 스푼 더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처럼 뭔가 끄적여 보고 싶은 날에는
이렇게 쓰다보면 글을 이어 쓰고 싶어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여전히 내 글쓰기는 열정 페이이다.
요즘은 보통 아침 9시, 10시에 일어난다.
늦게 잘 때도 있지만 일찍 자도 열감이 올라 깨서 뒤척이기도 하고,
신랑 코고는 소리에 깨서 못 자기도 한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유튜브 영상을 틀다가 소리에 더 깨서 오래 뒤척이기도 하고.
간혹 노캔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는 신랑발 소음은 작게 들려도 오히려 집중이 되어서 영 잠을 놓칠 때도 있다.그럴 때 겨우 잠들다 일어나면 몸이 솜방망이다.
아침에 대단하진 않아도 신랑 도시락과 아이 아침밥 때문에 일어나는데,
특히 몸이 무거운 날은 7시나 8시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버리면 다시 눕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면 9시, 10시가 된다.
그제야 밥을 챙겨먹고 설거지나 세탁기를 돌리면 3시도 되기 전에 아이들이 하교한다.
한국에서 살던 때와 많이 다르긴 하다.
그럴 때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게으르게 산단 말이야?"
하루가 너무 짧아서 아쉽고,
게으른 내가 싫어진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여기 오전시간, 한국은 밤시간에 그동안 시차 때문에 연락을 미루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잠도 깨울 심산이다.
첫째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에게 전화하고,
둘째날, 대학졸업 직후부터 친구에게 전화,
셋째날, 아이들 어릴때 만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갱년기 이야기, 아이 대입 준비 이야기, 퇴직과 돈 이야기.
각 이야기 주제는 달랐지만, 모두 나에게 응원을 보냈다.
"요즘 게을러져서 9, 10시에 일어나."
라는 말에,
고 했다.
"너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
라고도 하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역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라고 한다. 세상에 그것 보다 더 큰 응원이 어디 있을까.
내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친구들은 나를 믿어 준다. 내게 힘이 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어쩔 땐 가족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친구들 입에서 나온다.
반대로 나는 때로 듣기 싫은 말을 할 때도 있을 텐데,
(가령, 친구에게 "그 말이 너무 꼰대 같잖아."라고 해도 억울하다고는 하지만 내 진짜 말 뜻을 들어주고 이해한다던가...)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나를 믿고 응원한다. 그래서 더 고맙다.
오늘 필라테스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오신 거예요. 왜 이렇게 몸이 망가졌어요. 이제 힘든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몸부터 돌보세요."
라고 했다.
그래, 열심히 살았다.
좀 게을러도 된다.
사실 지금도 머릿속은 너무 부지런하다.
몸이 회복되면 예전처럼 또 달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아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의 저자 유튜브 강의에,
"화"가 많은 건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고,
화를 참는 건 가장 건강에 안 좋고,
화를 내는 건 그 다음으로 건강에 안 좋다고 했다.
화가 나지 않는 방법으로 명상을 가르쳐준다.
화를 날 수 있는 상황이 없을 수 없지만,
화 나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면 참 좋을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착하고 강한 사람은,
늘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세 명의 친구와 한 명의 필라테스 선생님 모두 착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의 단점은 참는다는 거고,
중년의 나이에 아파질 확률이 높다는 거다.
나는 너무 많이 참고 산 것 같다.
지금도 참는 건 습관이다.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덜 참고 덜 스트레스 받고
몸 상태를 건강하게 가져가는 것.
그게 중년의 나, 나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