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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10. 2023

조지 오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

나는 과연 조지 오웰을 아는가



인류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회자될 작품을 남긴다는 것. 작가로서는 가장 큰 즐거움, 어쩌면 인생의 목표일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작가의 이름을 듣자마자 <동물농장>이라든가 <1984년> 등 쟁쟁한 작품들의 제목이 자동완성으로 따라 붙는다. 설령 그의 작품을 완독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목은 접해봤거나 적어도 그 작품들이 상징하는 바를 누군가가 설파하는 것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조지 오웰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잘 아는가. 무수히 다작을 한 그의 작가 인생인데 (아무리 대표적일지언정) 저 두 권의 책만으로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뭐, 물론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다행인 것은 오웰은 소설 외에도 무수히 많은 기고와 에세이들을 남긴 작가여서 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자료들이 풍부하다. 심지어 그의 대표작들은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팩션 같다. 어느덧 고전이 되었으나 그 시각과 내용은 여전히 시사적이고.


그런 오웰의 에세이들이 역자가 엄선해서 엮어낸 ‘편역’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크, 이 영문 제목의 간결함에 치인다...)



장소는 나의 책 아지트, 서촌 북살롱 텍스트북 :)







그러니까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 단편은 존재하지만, 동 제목의 에세이집은 원래는 따로 출간된 적 없다. <나는 왜 쓰는가>를 포함해서 대표적인 에세이 일부를 역자가 선별하여 엮어서 낸 책. 


이런 사실은 책을 대여해서 표지를 열어본 후에야 알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 또한 흥미로웠을텐데. 그리고 요즘 잘 쓰지 않는 용어라서 ‘편역’ 또는 ‘편역자’라는 표현을 지양했다고 하는데 - 정확한 표현 같은데 굳이 지양할 필요가 있었나... 라고 나 혼자 생각.


아무튼 이한중 번역가님, 큰 일 하셨습니다. 역서 목록을 보니까 하나씩 도장깨기 해봐야 할 듯도 싶군요.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 자체로는 크게 흥미를 끌지 않았겠지만 아래의 설명이 제대로 와닿았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를 읽은 후에는 더더욱. 그래. 우리는 과연 <1984>와 <동물농당>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조지 오웰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thread를 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이한중 번역가의 thread를 탄 것일지도 모르겠다. 흥미진진. 나 진짜 이런 거 너무 짜릿해...







아무튼 <나는 왜 쓰는가>의 목차 중 일부는 이러하다. 선별 수록된 29편 가량의 기고와 에세이들. 반드시 다 읽고 조지 오웰이라는 유니버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겠다! 는 야욕 따위는 내려놓는 게 좋아. 그저 조지 오웰에 대해서 덜 알려진 이면의 세계를 기웃거리겠다는 정도로 충분해.


책과 동 제목인 <나는 왜 쓰는가>가 후반부에 배치된 점에는 대찬성이다. (사실 꼭 이 책이 아니라 해도 대부분의 단편집이나 모듬집들이 이렇게 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젊은 오웰, 대영제국 그리고 그 국민들에 대한 신랄한 (조금 자조적인) 위트, 파시즘과 시대의 흐름에 대한 꽤나 정치적인 견해를 담은 칼럼들.


앞단의 이런 글들을 통해서 ‘그 시대 당시의 조지 오웰은 이런 사람이었겠구나’를 어느 정도 가늠한 후에 - 그리하여 그는 ‘왜 쓰는가’를 접하는 편이 훨씬 더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아무래도 오웰은 오늘날로 치환하자면, 페이스북 진보적 정치 평론가로 이름 깨나 날렸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순을 지니기도 했지. 제국주의의 ‘사악함’을 깨닫고 극빈층의 삶도 경험했다는 것이 그의 삶 속에서 주요 지표일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구+식민주의+대영제국+백인’이라는 다수의 프레임에서 그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이기 때문에.


여전히 조지 오웰을 온전히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건 있다. 나에게 조지 오웰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리고 어쩌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나면 또 한번 달라질지도!)






덧붙임 하나.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장강명 작가가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거듭 레퍼런스로 활용한 것을 보고 결정적으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 또다른 책으로 인도해주는 책들, 책에 관한 책들, 정말 좋아.



덧붙임 둘.

조지 오웰은 명문으로도 유명한데 원작으로 읽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소설이든 에세이든. 사실 애당초 Why I Write로 검색해보긴 했는데 공공도서관들에는 아무래도 영어 원작 보유량이 제한적이더라. 뭐 알고 보니 이 책 자체가 편역 저서여서 영문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포중앙도서관, 안 그래도 장서구입비 줄인다는데 원서를 들여올 리가 없지. 흑흑. 연대 도서관 사용하던 시기가 좋긴 좋았어. 연대 등록금 오지게 비싸다고 허구헌 날 까댔으나 솔직히 도서관 운영 유지하는 클라쓰를 보면 오 역시 돈 많은 사학이 최고인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물론 남 몰래 그랬다)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중략)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면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 코끼리를 쏘다



"그런가 하면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는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파시즘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파시즘이라 불리는 것은 증오한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막히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다."

-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나는 작가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나라들이 관광휴양지가 되어가는 건 바로 그래서다. 아무리 싸도 불황이 횡행하는 곳에 놀러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모로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렌지나무 숲이나 식민기구의 일자리다. 영국인에겐? 낙타, 성곽, 아자슈, 프랑스 외인부대, 놋쇠 쟁반, 도적떼다. 그러니 여기서 몇 년을 살아도 인구의 9할은 다 침식된 토양에서 얼마 안 되는 먹을거리를 짜내느라 늘 허리가 부러지도록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라는 걸 전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 마라케시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과거는 현재보다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다. 과거가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여러 해에 걸쳐 따로 일어난 일들이 돌이켜 볼 때 하나로 압축되며, 우리의 기억 중에 원래 그대로의 진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914~1918년의 전쟁이 지금의 전쟁엔 부족한 웅장하고 대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은 주로 그뒤에 있었던 책이나 영화나 회상 때문이다."

-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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