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외근 땡땡이

2023년 5월 3일의 좋음

by 김젠비



꽤 오랜 시간 동안 발이 자유로운 (그러나 짐은 무거운) 외근직으로 살다가, 큰 회사 사무실에 틀어박힌 파워 내근 사무직으로 지내려니 이따금 갑갑한 순간이 생기곤 한다.


괴나리봇짐 방랑자처럼 지내던 시기에는 ‘일정한 출근처’를 원하기도 했는데 말이야. 역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여기에서 승리자는 내근이고 외근이고 간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돈 많은 백수’겠지만.)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당연하던 외근의 장면, 외부 공간에서 보내는 익명의 순간이 문득 커다란 자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오늘처럼.






오늘은 상사와 함께 가야 하는 외근 미팅이 잡혀 있었다. 시간은 오전. 장소는 여의도 사무실 인근이 아니라 광화문 정부청사 부근 스타벅스.


만나기로 한 상대방과는 대략의 시간대과 장소만 정해두고, 오늘 아침에 최종 확인 연락을 한번 더 날렸다. 10시 정도면 괜찮겠냐고. 어제도 이미 10시 부근 어떻겠냐는 언질이 오간 바 있었다.


답이 금방 오지는 않았지만 상대방도 출근 중이거나 출근 직후에 오늘 일정 챙기느라 잠시 정신없는 시간이겠거니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봤자 10시에서 앞뒤로 30분 변동 생기는 정도겠지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 광화문은 평소에 출근 동선에 비해서 크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되려 이런 합법적 사유로 광화문 거쳐서 느지막이 여의도로 가면 나는 좋지.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공영 주차장에 자리도 넉넉해서 마음도 편안했다. 여유롭게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카페에 자리 잡고 오늘의 커피도 한 잔 시켰다.






그런데, 어이쿠. 막상 상대방은 업무상 급한 호출이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동선이 바뀌었다네. 음? 난 이미 도착해 있는데? 그걸 왜 이제 얘기하죠?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백배 사죄 받음. 당신, 나한테 하나 빚졌군요. 잘 됐네. 오늘 미팅 내용은 우리가 당신한테 조금은 미안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다행인 건 상사는 10시 부근 미팅을 염두에 둔 건지 아직 도착 전이었고, 소식을 듣고 유턴해서 회사로 간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집에서 출발을 안 했거나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게 아닐까. 게다가 오늘 미팅은 본인이 요청해서 몇 번을 조율해서 어렵사리 잡은 자리였는데, 생각해 보니까 선결 이슈들이 있는 듯해서 이렇게 미뤄진 게 어쩌면 다행인 것 같다고도 한다(...)


이렇게, 외근 중에 합법적인 나 홀로 땡땡이 시간을 벌었다는 오늘의 이야기. 뭐가 됐든 난 오늘 일정 조율하고 공지하고 확인하고 심지어 제시간, 아니지, 일찍 와서 채비하고 있던 사람이라네. 내 귀책사유 아니지. 후후후.


그러니까 이 하찮은 자유를 누리면서 이 글을 등록하고, 커피를 마저 마시고, 혼자 오디오북 들으면서 여유롭게 운전해서 찬찬히 회사 복귀해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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