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줌. 챙김받음.

2023년 5월 4일의 좋음

by 김젠비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한 후에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 날씨를 확인한 후에 입을 옷을 고르고, 기분이 내키면 어쩌면 화장도 해보고, 산뜻하게 집을 나서서 출근...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상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나의 갈 길은 아닌 것 같아. 한때 새벽 요가도 다녀보고, 아침의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 날 밤에 옷을 미리 골라서 행거에 걸어두기도 하고, 이런저런 자잘한 노력을 해봤지만 여전히 출근 준비 시간의 우당탕탕은 피해갈 수 없다.


그나마 2인 가구에 각자 욕실, 각자 차량이 있으니까 어찌어찌 일상은 굴러간다. 사실은, 나만 정신 차리고 좀 일찍 일어나면 해결될 일이긴 해.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나의 아침잠 역사는 유구히 길고도 끈질기니까.






그 우당탕탕 출근 준비 시간에도 소소한 즐거움은 존재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샤워를 마치고 왔을 때 화장대에 놓인 오늘의 포션. 마그네슘과 정맥 순환 개선제. 잊지 말고 아예 다 먹고 가라고 뚜껑까지 따서 얌전히 올려두었다.


이렇게 오늘의 영양제를 챙겨주는 그의 기분이란 아마도 - 내가 이따금씩 그의 도시락을 싸줄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큰 희생이라거나 봉사랄 것은 없지만, 내가 가진 한 줌의 여유를 활용해서 상대방을 편안하게, 건강하게, 또는 즐겁게 해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서 스스로 흐뭇한 기분을 누리는 것.


그의 영양제 조공(?), 그 취지에 보답하기 위해서 오늘 점심 메뉴는 저염 잡곡 샐러드 볼로 골라보았다. 주변이 시끄럽지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힘을 빌어 차단해보자. 옆 테이블 남자의 향수가 너무 강한데 나는 곧 일어날 예정이니까 무시해보자. 사람 많은 곳에서 식사하려니까 기 빨리는 중이지만 내일부터 또 3일 연휴니까 그것 또한 잘 견뎌보자.


어쨌든 이건 오늘의 좋음에 대한 기록이니까. 그나저나 방금 다 먹은 샐러드 볼 꽤나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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