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을지로 느티책방
Fun is not something that falls right on your lap, just like that. It is you that should run after it, with all your might.
그래서 다녀왔다.
4월 14일.
을지로 느티책방.
성북동 소행성 글쓰기 모임 멤버 중 첫 책을 출간한 다섯 작가의 합동 북토크.
알고 싶었거든.
글을 쓰고 싶었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주제를, 첫 책이라는 형태로 빚어낸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성북동 소행성 글쓰기 모임에 찾아가는지도.
덕분에 을지로 책방 겸 카페인 느티책방을 알게 되었네. 역시 세상은 나만 빼놓고(?) 재미지게 돌아가고 있는 거였어. 이렇게 멋진 곳 있다고 그동안 왜 아무도 안 알려줌? (지금 알려줬잖아...)
여의도에서 퇴근하고 운전해서 을지로까지 가고, 주차하고 걸어갔더니 5분 가량 늦었다. 그래도 뭐 설마 자리 없겠어 했는데 웬걸. 북토크가 진행되는 2층 자리는 꽤 널찍했는데도 가득 차있었다.
첫 책을 낸 작가들인 만큼 가족과 지인들이 상당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꽤나 활기찬 분위기.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나 혼자 난데없이 찾아간 거였는데 이 익명성의 자유가 사실은 즐겁기도 해.
어떤 호소의 말들,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소행성에서 쓴 초고를 브런치북 형태로 연재해서 브런치 대상을 수상하고 (자그마치) 창비를 통해서 출판한 최은숙 작가님.
인권위 조사관이라니, 현직부터가 눈길을 끈다. 이를 잘 담아낸 책의 제목 또한. 한편 ‘저런 스토리가 없는 나는 과연 어떤 소재로 무슨 흥미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최은숙 작가는 ‘무슨 소재로’ 글을 썼는지보다, 얼마나 고뇌하면서 ‘꾸준히’ 글을 쌓아올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흔한 다이어트 격언처럼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어야’ 몸이 변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글도 ‘죽도록 고뇌해야’ 남들 보기에 그리고 나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책 한 권이 나올까 말까 하다는 걸까.
북토크 들어가기 전에 1층에서 작가들 책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늦어서 일단 올라갔다가 토크 마치고 구매하려고 내려갔는데 그때 이 책은 이미 품절... 지금 밀려 있는 책들 다 보고 나면 (과연? 언제?) 꼭 사서 읽어야지.
이일우 작가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
"금요일 저녁에 여기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글을 쓰실 수 있는 분입니다."
명쾌하고 입담 좋았던 이일우 작가. 지방의회에서 일하면서 직면했던 다양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고 한다.
글을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또렷하게 보여서 흥미가 생겼다. 아마 서점에서 지나가다가 이 책을 봤더라면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몰라. 그런데 작가의 목소리가 책에 생명을 심어주었다.
... 말하고 보니까 이게 북토크 하는 이유인가봐.
성현주 작가
너의 안부
작가의 본업은 코미디언이지만, 책은 아픈 아이를 간호하다가 결국 떠나보낸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북토크 과정에서도 위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책의 인세를 어린이병원에 기부했다는 소식이 남다르게 들린다. 누군가에게 책을 통한 위로를 건네야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 이 책이 내 기억 속에서 떠오르길.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전통주 문화 연구가, 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주제로 뚝심 있게 오래도록 글을 연재하면 결국 책으로 엮어낼 만한 힘이 생기는구나. 한 우물 파기의 위대함이란.
여담이지만, 본인은 책을 내겠다는 목표가 딱히 없었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너는 언젠가 책을 낼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이루어질지어다 ㅎㅎㅎ
이시문 작가
할머니, 나의 할머니
이 날 북토크에서 이시문 작가는 주로 ‘이렇게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도 책을 쓸 수가 있어요’라는 용기의 메시지(?)를 담당했다. 가족들도 ‘이건 우리나 알고 관심 있는 내용이지, 이걸 가지고 무슨 책을 쓴다고 그러냐’는 반응이었다지.
그나저나 표지 일러스트가 참 정겹고 이쁘군요. 책의 제목과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듯. 출판사 이름이 ‘어른의 시간’이라는 점도 소소하게 재미 포인트.
소행성의 주인장 중 한 명인 윤혜자 쌤. 위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북토크의 사회를 맡은 편성준 쌤. 그리고 오늘 북토크의 책들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한 채 퇴근 후에 헐레벌떡 왔지만 어쨌거나 내 자아가 시키는 대로 이 자리에 기어코 온 나. (의 발)
이 날 내가 구매한 책 원투쓰리.
#나는지방의회에서일한다
#살짝웃기는글이잘쓴글입니다
#부부가둘다잘먹었습니다
종이책 외에도 도서관 대출,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 형태의 매체를 돌려가면서 쓰는데 요즘 북토크나 저자와의 만남에 자주 다니다 보니까 종이책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또 주문했네. 집에 있는 것들도 다 읽지 못하고 쌓여가는데;
북토크를 마치고도 한참이나 느티책방 1층 서가를 기웃거렸다. 책이 엄청 많다기보다는 테마별 큐레이션이 대단히 흥미롭게 되어 있었다. 책의 미궁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 뭘 읽어야 하는지, 뭘 읽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would you like...?' 하고 슬쩍 권장하는 듯한.
그렇게, 몇 뼘 정도는 넓어진 나의 쬐끄만 세상.
#써야책이된다
#성북동소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