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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May 11. 2023

“보호자가 동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보호자’를 왜 멋대로 정하는 건데요...




오래전에 지나가다가 ‘음?’ 하고 멈춰서 한참 쳐다보다가 한숨 쉬고 찍어둔 사진이다. 언젠가 적절한 글을 엮어서 올려야지, 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리고 오늘 그 적절한 글귀와 생각을 만났다. 그것도 요즘 나의 가장 큰 애정의 대상 중 하나인 김희경 작가님의 책에서. (내가 이 작가님을 다음 주에 북토크로 만나다니! 생각만으로도 이미 설레는 요소가 내 삶에 존재하는구나.)






회전문은 건축 자재의 활용, 그리고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지다. (물론 나는 건축이나 에너지 분야의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 대강 상식적으로 이런 접근이 맞으리라고 가정하고...)


관성으로 어느 정도 움직이는 구조 덕에 밀거나 당기는 문에 비해서는 적은 물리적 노력으로도 통과할 수 있다. 외풍의 유입이나 에어컨 바람의 유출을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다. 동시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수를 제한해서 유동인구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바퀴 달린 장바구니나 캐리어 하나만 끌어도 회전문은 상당히 난감한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하물며 거동이 불편한 약자 - 움직임이 느리고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사람이라든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라든가, 또는 회전문의 가속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서 몸이 끼고 다치기 쉬운 어린아이 등 -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만약에 회전문만 있어서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는 거라면, 대체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게다가 회전문 외의 대체재도 문제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열 수 없는 문이 이 세상에는 수두룩하니까.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이런 이동 약자들에게는 보호자 동반을 권고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안전 문구인 셈이다. 이런 안전 문구를 구비하지 않았을 경우에 건축주, 사업주가 져야 하는 잠재적 리스크라는 것도 있고 말이다.


여기까지는 끄덕끄덕. 맞는 말, 좋은 말, 그래 그래 그렇지. 조심하자. 약자를 보호하자. 심지어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회전문에 이런 안내 글귀까지 붙여 놓다니 안전의식이 있는걸, 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아래 사진을 보자 :

굳이 밝힌다. 종각 그랑서울 지하 1층 회전문에서 찍었다.



거, 나만 흠칫하고 나만 불편해요?

같이 불편합시다, 좀.


보입니까. 시신경을 거쳐서 뇌리에 전달됩니까.

모든 인포그래픽에서 ‘보호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단박에 알아채고 ‘어라, 저기요,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기를 소망해 본다. 내가 느낀 불편한 심경에 대해서 구구절절 쓰지 않아도 이미 그 불편함의 영역에 서있는 사람들이 많기를 기대해 본다. 욕심인가.


아마 저 인포그래픽을 제작하고 승인 요청한 담당자도, 이를 거부감 없이 승인한 사람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지. ‘아니, 잠깐, 왜 노약자를 부축하고 돌보는 게 왜 다 여성으로 그려져 있지?’ 라는 생각은 굳이 떠오르지 않았을 거야.


마치 공공 여성 화장실에는 치마를 입은 사람의 인포그래픽이 빨간색이나 분홍색으로 그려져 있거나, 여성형 동물 캐릭터인 미니마우스가 엄청난 속눈썹과 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왔듯이. 그저 관습적으로 그리고 관행적으로 승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 이 안전 문구의 취지는 ‘회전문에서 다칠 수 있는 이동 약자를 보호하자’이다. 사지 멀쩡하고 판단 가능한 누군가가 ‘보호’하는 게 요지이다.


이동 약자를 보조하고 보호할 수 있는 이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트랜스젠더든 전혀 상관없을 일이다. 이게 남녀 화장실 표시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다면 저 ‘보호자’는 그저 중성적인 성인,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했어도 충분하다는 소리다. 그런 콘텐츠에 굳이 치마를 입혀서 사회적 고정관념을 만천하에 전파하고 있다.






덧붙임.


사진 하단의 캡션에도 썼지만 이 장소는 건설 대기업 GS의 사옥이자 서울 시내의 나름 랜드마크 건물인 ‘GS 그랑서울’의 지하 1층,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종각역 지하철 방향 출입구의 회전문이다.


위 사진은 올해 초 (아마도 1월) 촬영한 것인데 위 인포그래픽은 현재까지 (2023년 5월)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등록하고, 사방팔방 알리고 공론화를 한 다음에 다시 가봤을 때에 바뀐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무리는, 존경하는 김희경 작가에게 넘겨본다.

(사랑해요 작가님. 북토크에서 만나요 작가님.)




언젠가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의 보호자 침상에 앉아 병상을 둘러보다가, 나이 든 노인의 보호자가 거의 다 나이 든 여성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잠깐 해보니 돌봄은 근력이 좋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가 보호자에게 몸을 완전히 의탁해 버리면 아무리 체중이 적게 나가는 사람도 천근만근 무겁기 때문이다.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질병이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병실에 앉아 있다 보면 이 힘든 일을 왜 나이 든 여성들이 전담하고 있는지 착잡해지고, 수당이 많이 올랐어도 여전히 허드렛일로 치부되는 돌봄 노동이 여성의 일자리처럼 굳어버린 현실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 김희경 작가, <에이징 솔로> 3장. 홀로 외롭게 나이 든다는 거짓말 - 생계, 주거, 돌봄, 죽음을 준비하는 비혼의 상상력




#사회적편견 #에이징솔로 #김희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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