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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Jun 05. 2023

책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아아, 번역서의 딜레마여...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문학 실험실' 파리 리뷰가 주목한 단편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레이먼드 카버 외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도서출판 다른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이고, 짧게라도 감상평 남기겠노라고 다짐한 것도 어언 1년이 넘었다. 오래 간직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떠나보내기 전에 이렇게 기억을 기록으로 옮겨봐야겠다는 일종의 과제의식이 있었달까. 이 글을 쓰고 나면 어쩌면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호기심을 돋우는 표지 디자인. 경쾌한 색감. 다채로운 모둠 메뉴 같은 단편소설집이라는 형태. 그리고 여러 명망 있는 소설가들의 추천사. ​이 정도의 조합이라면 안 읽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 이 글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는 서평은 아니고, 나의 주관적인 독후감, 그러니까 책을 읽은 소감, 끄적임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목차 소개라든가 저자 평 등은 생략할 예정. 사실 딱히 평을 할 만큼 식견이 있지도 않고.




그러니까, 번역가님 왜...

사실 나는 이 책에 유감이 많다. 번역에 대한 유감.


이 독서 기록을 굳이 남기는 이유도 ‘책이 너무 좋아서’ 또는 ‘추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점이 너무 아쉬웠다’는 나의 기억을 떼어내서 기록으로 남기고 이 책은 이제 떠나보낼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책을 읽기 이전에는 엄청난 기대까지는 아니어도 호감 어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추천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책이지만 좋은 취향의 큐레이션의 가이드를 받아서 경험과 취향의 범주를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 번역이 너무 눈에 안 차서 그 번역을 누가 했는지 찾아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게 나의 감상의 핵심이라서 이 기억을 따로 기록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대한 경험을 한차례 털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아.

이 책의 원제는 <Object Lessons> 라고 한다.​


번역가는 이를 ‘실물 교육’이라는 뜻으로 소개하는데 이 또한 직역체라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사실 정식 제목도 아니어서 그저 서문에 언급되는 표현인지라 별 상관없을 수도 있는데 난 이미 여기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

Object lesson이란 이를테면, 인식의 대상이 되는 실물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서 개념을 인식하고 지식을 체득한다... 뭐 이런 의미인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도된 중의성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를 1:1 단어 투 단어 ‘실물 교육’이라고 옮기는 건 너무 소극적인 번역이야. 추정컨대 원제의 의도와도 아마도 안 맞지 않을까.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뜻을 풀어서 의역해야 할 터인데, 흠, 그러자니 차라리 제목을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또는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원제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수록된 단편 중의 한 문구에서 차용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이 자체로만 봐도 꽤 어색한 번역체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래도 저렇게 옮겨야 했던 문맥상의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서 일단 판단을 보류했더랬지. 아니다. 책을 읽고 나면 더욱이 아쉬움은 커진다.


원문이 매력 있어서 더더욱. 책의 이런저런 문구 번역들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비교하려면 영문판 원본이 있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없더라. 사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없다. 국내에는 아예 없는 듯. 그렇다고 굳이 해외 주문해서 소장하고 싶은 책도 아니고 말이야.​

다행히도 제목으로 차용된 문구는 나름 대표적인 부분이라서 구글에서 원문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작품 자체가 다소 난해해서 책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 문구만으로 내용과 상황 파악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아래와 같다.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I sensed everything before it happened.
Like I knew a certain oldsmobile would stop even before it slowed, and by the sweet voices of the family inside, I knew we'd have an accident in the rain.

(Car Crash While Hitchhiking by Denis Johnson)




시간의 순서, 기억의 구성이 뒤섞인 것이 특징인 작품 속 화자의 서술이다. (사실 약쟁이임...) 이후에 겪은 감각과 인지가 과거 시점의 기억과 얽히면서 마치 순간이 영원처럼, 영원이 순간처럼 묘사된다.​

​날카로운 감각의 묘사가 아주 탁월해서 단편집의 제목으로 채택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이건 빗방울들의 ‘이름’을 알았다는 게 요지가 아니다.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마치 모든 것이 슬로우 효과 걸린 것 마냥 그 찰나의 감각이 인수분해되어 인지가 되었다는 뜻이지. 과거에 겪은 차 사고를 회상하면서, 문장은 사고 이전의 시점에서, 그러나 그 훗날의 기억을 덧입혀서 n차원 마냥 몽롱한 화자의 뒤죽박죽 정신세계로 독자를 이입시키는 문장이다.(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를테면 이런 해석은 어땠을까.

‘빗줄기 속에서도 나는 그 수많은 빗방울들을 하나하나 다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뭐가 됐든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라는 직역체만은 제발...

​​

물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쉽지, 문학 작품의 의역이라는 게 결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특히 이렇게 원 저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라면 더더욱. 번역자 또한 답답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 해당 작품만이 아니라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도 번역에 크게 아쉬움을 여러 번 느껴서... 더 이상 이해를 포기했다. 이 책은 실험적이고 나름 흥미로운 구석도 있지만 번역이 몰입을 방해하는 책이야. 이건 도저히 어쩔 수가 없네. 그리고 이 책을 굳이 원문 직구까지 해서 보기에는 나의 호기심과 열정이 부족하다...


​​



꿈보다 해몽, 작품보다 해설



번역을 차치해 두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흥미로운 책이다. 각각의 단편이 다소 난해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함께 수록된 해설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실 작품보다 해설이 더 재밌었던 경우도 여럿이었다.

가장 기대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이 나에게 그러했지. 작품 자체만 보면 대체 작가가 뭘 표현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데(...) 데이비드 민스가 쓴 작품 해설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몇 번을 읽었다.

​​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 특별한 감정을 영원히 안겨준다. 우리에겐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이,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주어진다. 좋은 이야기는 역설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는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충만하지는 않다. 주어진 거라고는 조금 더 큰 존재의 작은 조각,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 관점의 전환, 몇 주 늦게 듣는 진술이 전부다.


이야기 막바지에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연결되더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몇 주가 지나고 여자애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날 밤을 회상한다. 그 광활한 거리는 페이지 위에 단지 몇 개의 빈 줄로만 나타난다. 나는 그 마지막 한 줄 띄우기가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빈 줄이 이야기를 접는다.




물음표만 남기고 스쳐 지나갈 뻔했던 작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호기심을 살려낸 것은 이런 해석의 관점들이었다. 다음에 도서관에서 레이먼드 카버 단편집은 따로 찾아서 읽어볼까, 라는 생각까지는 들었을 정도.

하지만 이 역시 원제인 <Why don't you dance>를 ‘춤추지 않을래’로 번역한 점이 너무 거슬려. 흑흑흑. 도저히 이런 요소를 그냥 넘길 수 없는 병에 걸린 나...




보유할지, 방출할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책은 1회독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블라인드 테스트인 셈 치고, 한번 겪어봤으니 됐어. 나의 감상과 기억을 남겨두고 이제 누구에게 주든 중고서점에 팔든 해야지 라고 마음속으로 분류해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독후감을 쓰려고 다시 뒤적여보니까 작품 해설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보이더라. 흠, 몇 년 후에 다시 꺼내서 읽어보면 또 다르게 보이려나. 타임캡슐처럼 미래 그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 묻어둬야 하는 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희한하게 내 삶에 계속 붙어있는 중. 거참.​​​ 강추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지인 누군가가 ‘뭔데, 대체 어떤 책인데 그래’라고 궁금해한다면 기꺼이 빌려줘야지...




책의 구성이나 내용보다도 어쩐지 번역서의 딜레마 사례로 남아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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