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와이프 (The Wife)>, 2017
[영화] 더 와이프 (The Wife, 2017)
작가 남편 '조'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내 ‘조안’, 마침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고 ‘킹메이커’로서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두 사람의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는데…
- 네이버 영화 줄거리
사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스토리는 예상가능했다. 노년의 작가 '조'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아내 '조안'의 손을 잡고 기뻐할 때, 아내가 작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작가지망생이었던 아내의 대학생 시절 장면에서 아내가 작가를 대신해 무엇을 해왔는지 분명해졌다.
다만 그 점이 분명해지니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부부가 그런 관계가 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먼저 상대방에게 그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을 들은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부부는 서로의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그 관계를 어떻게 지켜왔는지.
인상깊은 건 영화가 이 부부의 관계를 아름다운 파트너십으로 결론짓는다는 것이다. 시상식에서 조는 자신의 작품활동을 위해 자신을 '보필'해준 조안에 대한 감사로 수상소감을 채우고 난 후, 조안은 배신감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조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이후 영화의 마지막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의 장면에서, 그녀는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자며 알랑거리던 작가 나다니엘에게 대필에 대한 그의 추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리고 만에 하나 조를 모함한다면 법적으로 대응을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가는 나다니엘을 뒤로 하고 옅게 미소짓는 조안의 여유로운 표정이 부부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말해준다.
글솜씨가 빼어나지만 여성작가는 인정받을 수 없다고 믿었던 여자와 글솜씨가 부족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남자. 멀리서 보면 남성중심사회에서 억눌려야했던 여자와 사회분위기에 기대어 명예를 누릴 수 있었던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내게 다가온 부부의 첫인상이 그랬다. 그런데 영화에서 부부의 관계를 다르게 결론짓는 것은, 가까이서 보면 그 둘의 관계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에 대한 처음의 묘사가 모두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묘사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 데이빗 문제로, 조의 외도 문제로, 또 서로에 대한 감정의 문제로 조와 조안이 부딪힐 때마다 그들의 다툼은 가슴 아프고 숨막히게 답답한 선까지 치달았다가, 예상치못한 순간들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어진다. 딸 수잔나의 출산 소식이라든지, 데이빗의 눈물이라든지, 조의 갑작스런 심장마비라든지. 부부는 딸과 손주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아들의 등을 토닥이고,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함께 숨을 몰아쉬며, 바로 전까지 이어온 다툼의 순간을 잊는다. 부부가 인생에서 함께해온 시간들이 빚어내는 순간들이다.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고 때로 욕설까지 내뱉던 둘은 그 순간들이 주는 희열과 유대와 애정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다정한 말투로 말을 건네고, 이내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그들의 삶에는 여러 번 외도를 일삼은 조와 그 사실을 알고나서 상처받은 조안. 그 이야기를 작품으로 녹여내야하는 조안과 자신의 삶이 글감은 되더라도 내 손에서 나온 작품으로 만들 수 없는 조. 부인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 안에서 그녀를 돌보는 조와 촉망받는 남편이 더 멋져보일 수 있게 집 밖에서 그를 돌보는 조안.
조와 조안.
조안과 조.
"내 아내는 전혀 글을 쓰지 않아요"
"너희 아버지가 그 창작의 고통을 견디고 글을 썼잖니. 그렇지 여보?"
그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하는, 또 내가 듣는 말 하나하나에 온 감각이 곤두서는 느낌.
부부의 머리와 몸은 그 말들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해왔을까. 그 말들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윤기나던 남자의 갈색과 여자의 금색 머리가 모두 하얗게 세어버린 날에도 결코 무뎌질 수 없었던 그 말들을.
그것을 견딜 수 있게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리라. 조가 작품 <호두>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솔직한 비평을 들려줄 용기를 가졌던 조안의 사랑과, 그 비평을 듣자마자 'Fuck! 역시 우리는 잘 될 수 없어'라고 뱉었다가 다시 조안을 끌어안는 조의 사랑. 노벨상 수상소식을 함께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수화기를 공유하고, '우리가 책을 출판한다'고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침대 위에서 방방 뛸 수 있는 그들의 사랑. 그 사랑이,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절로 먹먹해지는 순간들을, 그리고 그 순간들이 무수하게 쌓인 시간의 역사를 견딜 수 있도록 했으리라.
나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고, 머릿 속 상상만으로 그저 동경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경지.
시간의 무게가 묵직한 부부의 사랑이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겨,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영화관을 떠날 수 없었다.
조안과의 말다툼 이후 심장마비가 온 조는 침대에 누워 겨우 숨을 몰아쉬면서 조안에게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조안의 대답에 거짓말을 잘한다며 속내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조안을 중심으로 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의 입장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오히려 조이다. 단순해보이는 그의 성격이 정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지, 영화 후반부까지 부부의 공동작업에 대해 모르는척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었을지. 한 번 더 영화를 본다면 그 때는 카메라의 클로즈업에서 빗겨간 조의 표정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노벨상 수상작을 쓴 진짜 작가이자 영화에서 세밀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인물이 '조안'이었다면, 그 작품에게 불러질 이름을 준 또다른 작가이자 영화에서의 사랑을 완성하는 인물이 '조'이니까.
영화 <더 와이프 (The Wife)>, 2017
감독: 비욘 룬게 (Bjorn Runge)
배우: 글렌 클로즈 (Glenn Close, 조안 역), 조나단 프라이스 (Jonathan Pryce, 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