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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냥 좀 우울했을 뿐인데.

by 제나 Jenna

그냥 좀 우울했을 뿐이다.

평소보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고, 무언가를 할 힘이 없었고, 그저 멍했을 뿐이다.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을 뿐이다.


1) 2017년 여름~가을.

조금 지친 상태로 시작된 석사 3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앉는게 힘들었다. 그리고 양치를 할 수가 없어서 출근을 못했다. 처음 몇 번은 아파서 병가를 냈지만 극한에 몰리자 상사에게 양치를 도저히 못 하겠어서 출근을 못한다고 울면서 말을 했다. 그 와중에 학교는 가야했다. 무조건 졸업은 해야 하니 휴학을 한다고 나에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회피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수업을 듣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병원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했다. 자신도 이렇게 힘들었을 때 병원에 갔는데 차도가 있었단다. 그때 알았다. “내가 심각해 보이는구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 2019년 봄~여름

박사 과정은 역시 시작부터 힘들었다. 석사 졸업을 하고 1년을 쉬어서 그런지, 한 살을 더 먹어서 그런지, 교수님의 기대에 짓눌려서 그랬는지 여하튼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힘들다고 하소연을 할 힘이 있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할 힘이 없어 그나마 남아있는 힘을 공부에 쏟았다.

수업 때마다, 발표 때마다 너무 긴장을 해서 틱 같은 반복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업 전에는 계속 구역질을 했다.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새벽 5시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긴장이 되어서 눈이 떠졌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출근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스크린 도어가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뛰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왔다. 오피스텔의 긴 복도를 지나가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칼로 찌르지는 않을까 공포감을 느꼈다.

병원에 가기로 했다.


3) 2023년 여름.

물에 물감이 번지듯 어느샌가 나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자다가 눈물이 나왔다. 일이 버겁긴 했지만 다 큰 성인이 울 정도는 아닌데 회사에서 울면서 퇴근을 했다. 직무 특성 상 고객과 소통할 일이 많아 항상 전화 벨소리를 크게 해 두었는데, 이제 벨소리가 무서워졌다. 그래서 진동으로 해두었다. 하지만 워치의 진동과 진동 소리도 무서워서 아예 방해금지모드로 해 둘 수밖에 없었다. 진동이 무서워 워치를 차고다닐 수 없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간신히 잠에 들어도 5시면 깨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오늘 발견한 나

#우울증 #우울삽화 #불안장애 #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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