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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박사 학위가 나에게 남긴 것.

by 제나 Jenna

짧은 2년 반이었다. 박사 과정에 입학을 하고 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2주에 한 번 있는 지도교수님의 수업이었고, 교수님의 수업이 끝나면 다음 날부터 다시 교수님의 과제와 수업 준비를 하며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과제를 할 때, 발표를 할 때 항상 드는 생각은 ‘난 왜 이렇게 부족하고 힘들까? 남들은 다 잘 하는데...’였다. 다른 사람들은 거뜬히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제외하고. 나는 항상 과제와 발표가 버거웠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으며 정신 건강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불안증이 심해져서 발표 순서를 기다릴 수 없었다. 항상 우울하고 힘 빠진 표정을 하고 다녔다.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자괴감은 하늘을 찔렀다.


박사 과정은 나에게 대체로 가시밭길이었지만 그래도 폭신폭신한 구름다리가 간헐적으로 존재했다. 대부분 힘들었지만 힘듦의 사이 사이에 꿀 같은 칭찬은 나를 칭찬 중독상태에 빠지게 했다. 칭찬 중독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칭찬이라는 것은 가스라이팅과도 같아서 나를 더 열심히, 나를 갉아먹으며 공부하게끔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2년 반의 박사 과정 그리고 학위가 나에게 남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맺음을 냈다’라는 것이다. 그 힘든 과정에서 나는 ‘버텨냈고’,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해냈고’, ‘끝’을 냈다. 지옥 같았던 2년 반이 끝나던 날, 소름이 끼칠 정도의 성취감을 맛보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4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남은 건 그 힘든 과정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누구나 삶 속에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이 힘든 과정을 끝냈을 때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버텨낸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하나씩 성취해가고 있다. 어려운 일을 한 가지라도 하루에 해나아 간다면 언젠간 그 일을 끝맺을 수 있다. 끝은 언제나 오게 되어있다. 회피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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