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보다 4년 전에 결혼한 정말 친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
친구는 2년 전 난임병원을 다니며 임신해서 지금 2살 난 아기를 키우고 있다. 친구와 내가 사는 곳이 거리가 있고, 친구가 아기를 낳고 난 뒤에는 육아를 하느라 바빠서 자주 보지는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아예 먼 거리는 아니라 두 달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보려고 약속을 잡는 편이다. 친구지만 난임생활의 선배로 내가 결정을 못 내려 헤매거나 결과가 안 좋아 축처져 있을 때 위로가 되는 말을 많이 해준다. 시술을 하러 갈 때나 피검 수치를 확인하러 갈 때는 달달한 디저트 기프티콘을 보내주며 나를 응원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10월 말 동결 2차가 실패인 걸 알게 되자마자 가족들을 제외하고 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렸다. 사실 요즘 들어서는 시술을 받는 것 자체를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않는다. 혹시나 결과가 안 좋으면 또 그 사실을 말해야하는 게 불편하게 느껴져서... 병원을 다닐 때는 다니는 대로 정신없어서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시술 후에 잠시 쉬고 있을 때도 내 생활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약속을 잘 잡지 않게 된다. 내 생활이 단조롭고 또 가끔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우울해질 때도 있기에. 하지만 이 친구와 이야기하다보면 이런 내 마음을 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이 생활이 길어질수록 친구에게 의지하는 내 마음이 커졌다.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실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이 친구였다. 나는 지금 무언가를 결정할 힘이 없고 무기력한데 친구에게 물어보면 뭔가 답을 줄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서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가진 것의 보상은 충분히 받은 것 같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뒤 난임병원을 다닐 때의 기억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기도 했다.
친구가 사는 동네에 가서 맛있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었다. 그러다 내 난임생활의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휴직을 내고 난임병원을 다니는 동안 이룬 게 하나도 없어서 허탈하다는 내 말에 친구는 예상치도 못한 말을 했다. '너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아기가 어쩌면 이 시간 편하게 즐기라고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아기는 올 때가 되면 꼭 올 거야. 마음 졸이지 마' 친구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러다 '아..그렇지 난 지금 휴직하고 있어서 시간도 많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충분히 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건데 왜 아기가 안 생기지에만 집중해서 불행하게 살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아기를 낳고 난 뒤 난임병원을 다닌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했다. 그리고 아기가 주는 기쁨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다른 차원의 기쁨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니 가끔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서 종종 아기를 낳기 전에 좀 더 여행을 많이 다니고,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러니 부디 나는 아기가 오기 전에 많이 즐겨두라고.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이 친구가 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어찌보면 친구는 회사다니랴 애 키우랴 나보다 훨씬 더 바쁠텐데도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내가 난임 생활을 해보니 2년 전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임신이라는 걸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때 터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지 알겠다.
이젠 예쁜 아가가 찾아와 그 모습을 담은 카카오톡 사진을 수시로 바꾸는 친구를 보니 이제 엄마로서의 삶을 즐기게 된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나도 언젠가 친구처럼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