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생활의 끝은 알 수 없지.
나는 전형적인 ISTJ, J 점수가 거의 만점에 가까운 '계획형' 인간이다.
어떤 경우에서건 계획을 짜는 것을 즐기는 그래서 다이어리를 하루에 몇 번이고 들여다보는 스타일.
그 덕분인지 여태까지 살면서 큼직큼직한 계획들은 거의 다 목표한 시점에 이루며 살아왔다. 목표한 대학, 직장, 결혼, 집 마련 같은...그래서 '임신'도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나는 한 해가 끝나갈 때쯤이면, 스산한 마음을 다잡고자 늘 다음 해 계획을 짜는 편이다. 작년 말 나의 2021년 목표는 '임신'이었다. 상반기에 임신을 하고, 하반기에는 복직할 계획까지 야심차게 세워두었었다. 결국 휴직을 연장했고, 아직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새해 계획 세우기, 다이어리 작성법'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강의를 듣는 사람들끼리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과제를 공유한다. 매시간 과제가 주어지는데 과제 내용은 길게는 인생 목표부터 짧게는 하루 계획을 세우는 것. 우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매해, 매달, 매일 어떤 노력을 할 지 정하는 아주 의미있는 작업인데....예전에는 펜을 든 즉시 뭐라도 끄적이던 내가 이 과제를 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임신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은데, 그게 언제 일어날 지 모를 일이라는 게 너무 답답했다. 본격적인 난임 생활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야심차게 '계획임신'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최소 3개월 전에 몸 관리를 하고, 영양제를 챙겨먹고, 필요한 임신 전 검사를 받아야한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임신 전 검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보건소에 찾아가서 받았다. 그 책들은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데, 요즘은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계획임신의 '계획'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일까. '계획적으로' 되는 거였으면 난 이미 출산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인가. '인생은 계획대로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나의 신조를 버렸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이때쯤 결과가 나와야지'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때가 되면 올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요즘은 매일매일을 잘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단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잊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좋은 엄마로서의 삶'을 살 것이다.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괜찮겠지. 그리고 나는 '좋은 엄마'외에도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은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평소 배우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기록하는 삶.
한 해가 다 지나갈 무렵 '올해 한 게 뭐였지' 생각하는 것보다 '올핸 이것도 했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의 내가 할 수 있을 일에 집중해볼 생각이다. 그래야 아이가 찾아왔을 때 '이런 걸 했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후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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