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길 위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NA Oct 09. 2021

미국 교환학생_ 주전자 사건

내 첫째애(주전자)는 그렇게 며칠만에 가버렸지…

옛날일이지만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을 꺼내본다.


미국 교환학생으로 1년간 지냈던 적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스케이트 보드를 맨날 들고 다니는 조나단이란 애랑 나름 친한 기숙사 이웃으로 지냈었다.


애가 굉장히 똘망똘망하게 밤톨마냥 생겨서 뿔테안경에 모자를 쓰고 맨날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다녔는데  열정넘치고 친절했다. 외향적인 반장같은 애랄까.

걔한테 자주 물건도 빌리고, 걔도 나한테  많이 빌리곤 하는 더불어 사는 이웃공동체를 실천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은  친구가 주전자포트(전기) 빌려도 되냐고 했다. 항상 공용 부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쓰라말하고 나는 라운지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는데  몇분뒤에 우당탕탕 복도를 뛰어오더니  주전자 지금 불난다고…!


순간 나는 벙쪄서 저게 무슨 말을 하는건가. 입력에 오류가 나서 왓? 쟤가 뭐라고 하는거시여 그러고 있는데

다른 라운지에 있던 애가 와다닥 뛰어서 자기도 보겠다며 부엌에 가는게 아니겠는가. 나도 애들이랑 우르르 조나단을 따라서 부엌에 가는데... 와우…오마이갓.

부엌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온 기숙사 복도에 자욱히 회색 연기가 가득했다…그리고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이런… 전기포트 위에 꽂아서 스위치만 올리면 되는 주전자 포트를!!! 왜 스토브 위에다가 올려놓은것이야. 그래서 불이 난거였다.

이 친구 진짜 정말 골때리네…난 그게 넘나 웃겨서 빵터졌고, 부엌에 가득찬 연기때문에 기숙사에 비상알람 때르르르르릉 거리면서 계속 울리고 있고 기숙사의 모든 애들이 다 나와가지고 콜록거리며 이게 무슨일인가 두리번거리면서 부엌에 오고. 정신없는 그 인파속에 조나단은 미안해서 눈치보면서 미안하다고 그러고 있고. 정말 시트콤 같았다.

다행히 내가 갔을때 불은 꺼져있었고 다만 매캐한 고무탄내와 자욱한 연기, 그리고 주전자 바닥이 죄다 녹아서 부엌 스토브 위에 처참하게 눌러붙어있었을 뿐이었다…

모든 애들이 다 부엌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그 해프닝의 주인공이 조나단과 내가 빌려준 주전자라는게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전기 주전자를 모르는게 말이 되냔 말야? 미국인 아니야? 아무리 신입생이라 해도…옆에 있는 애한테 이거 너무 웃기니까 녹은 주전자랑 조나단과 함께 사진 좀 찍어달라며 부탁했다.

그러니까 스포츠맨 정신이라며 Rotc 하는 우리 흑형 랭스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주며 사진을 찍어줬다.


아무튼 기숙사 매니저가 찾아와서 조심하라고 주의도 주고 사건보고를 위해 조나단과 내 이름을 적어갔다. 내 이름까지 적어간건 쪼금 억울했다. 빌려준 죄밖에 없는데….


한 3일 썼을까? 며칠밖에 써보지 못한 내 새삥 주전자…내 첫째애 안녕. 그래도 덕분에 정신없게 복작복작 웃긴 해프닝을 겪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뒤 역시 착한 조나단은 내 방에 찾아와서 너의 주전자가 이게 맞냐고 아마존으로 새 주전자를 사줬고.

내 두번째 주전자가 도착했다.


두번째 주전자 위에 주의사항이 붙었다.


“my second son”

둘째아들임

“do not use on the stove”

스토브 위에서 사용하지마


한동안 이 주전자는 우리 기숙사 1층에서 명물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