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by 온지엽

내가 만약 탈북자라면 나는 평성에서 났다가 외화벌이 일꾼인 아버지를 따라 평양과 러시아 모스크바를 오가는 성장기를 겪었을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거주할 때면 평양외국어학원에 재학했을 것이다. 러시아 전공에 일본어 부전공이었겠지. 하지만 평양외대나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에 진학하기도 전에 내가 남조선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타고 들어온 드라마를 시청한 죄로 양강도 혜산이나 대홍단으로 추방당할 거야. 원래 같으면 수용소행이었겠지만 아빠 돈으로 감형됐겠지.


혜산의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배회하는 삶을 살다가, 땅 위에 떨어진 강냉이 조각을 주워 먹기도 할 거야. 그러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자결을 시도하지만, 그건 조국을 배반하는 행위인지라 가족들의 안위를 고려해서 차마 죽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그러느니 저기 국경 너머 중국으로 가거나 남쪽동네로 갈 꿈을 꾸게 돼. 그건 아버지 수령님, 대원수님을 원망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살고픈 끈질긴 생명에 대한 의지에서 기인한 거야.


청산가리와 단도와 담배를 챙긴다. 군인들을 피해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고, 중국인 브로커를 만나 탈북한다. 인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인다.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친다. 임대아파트에 몸을 담는다. 알바를 뛴다. 돈을 벌고 영혼을 판다. 끊임없이 외로워한다. 하지만 씩씩하다. 그러나 공허하다. 모든 걸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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