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외교를 꺼리는 편이다. 어릴 때는 그게 좋은 줄로 알았다. 근데 어느 나라의 누구누구 앞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면 그 어느 나라의 누구누구가 흡족해하는 게 꺼림찍하다. 그 공연은 목적이 아니라 그 공연의 앞뒤로 쑥덕쑥덕해낸 어떤 약속이나 이야기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게 음침하다.
예를들면, 비빔밥의 고명의 색감과 배치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 것이다. 서양의 푸딩과 동양의 어떤 생선을 조합시켜 생선푸딩을 만들어 놓고 우리가 이렇게 조화를 이루어 함께 유영하듯 나아갑시다!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근데 그러면 한쪽에서는 왜 생선이 푸딩 안에 갇혀있는 것이냐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왜 생선만 보이고 푸딩은 투명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해야지 왜 생선이 주인공이고 우리는 배경이냐 할 수도 있다.
한편, 외교관 혹은 정보기관의 자녀는 한 술 뜬 푸딩 위로 생선 살점을 얹어서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그 아이는 이집트 출신 네덜란드인 어머니와, 스위스인 아버지를 뒀지만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3살부터 에티오피아에서 자랐다가 11살에 벨라루스로 이사 온 아이와 성적을 겨뤘을 것이다. 그건 국가의 우월성을 다투는 보이지 않는 국력의 과시다. 줄리아가 동전을 보면서 암산으로 돈을 세면 그건 중국인의 머리가 그만큼 좋은 것이다.
다시 만찬자리로 돌아와서, 이 아이는 그 생선푸딩을 먹을 것인가? 반드시 첫 한 술은 떠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히 씹어서 '삼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삼킨 뒤에 구역질을 어떻게든 참는 것이다. 그리고 반응은 1. 음! 정말 맛있네요, 2. 오오- 새로운 맛이네요! 중 하나다. 정말 정말 너무 너무 토할만큼 맛이 없으면 3. 익숙하지 않은 맛이네요! 해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로 똑똑하고 매너있는 아이라면 상대쪽의 전통인 푸딩의 그 탱글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을 강조해서 칭송해야 한다. 거기에 푸딩의 제조방식을 덧붙여서 언급하면 금상첨화다. 한국에도 이 비슷한 '묵'이라는 음식이 있으며 단단한 도토리로 만든다고 일러주면 기특한 아이로 대사 사모님의 눈에 띌 수도 있다.
외교 공연에서 테너가 아닌 소프라노를 들려준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여성 소프라노 대신 어린 남아를 세워서 노래시킬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은 무한한 것이다. 예술은 본래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으려고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액귀를 물리치거나, 점술을 놓을 때 춤과 노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초에 춤과 노래와 음악과 미술과 조형물은 모두 그런 목적을 가진 더러운 것이다 할지도 모른다.
근데 예술은 투명해야 한다고 본다. 19금 영화의 어떤 아름다움이 대단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야한 건 그저 야한 거고, 잔인한 거는 그저 잔인한 것일 뿐이다. 그게 예술이라느니. 난 그걸 공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