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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희 Aug 17. 2021

실현된 허구

공간감성#15 서울의 상업공간

상상과 지각의 경험


서울 도심의 낮과 밤을 여럿 지내며 순간의 상황과 느낌에 집중하고 기록했다. 3년의 서울살이 동안 예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서울의 구석을 돌아다니고 시간의 구애 없이 자투리 공간부터 골목, 이웃의 모습과 상황을 살펴보았다. 서울 낮 시간은 모두가 분주하며 그 열기가 뜨겁고, 어둠이 내려 도시의 색이 짙어진 이후에는 고유의 모습으로 차분하게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단단한 뿌리를 가진 공간도 있고, 약하지만 세월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공간도 많다. 그동안 기록했던 자료와 사진을 보며 어떤 상상과 감각으로 공간을 바라보았는지 정리해보았다.     


시간의 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낮과 밤의 시간적 변화에 도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과 통근시간이 있으며, 2번의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다. 정확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움직이고 하루의 계획을 결정한다. 반면 시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프리랜서, 밤에 영업하는 공간, 외부와 차단된 체험공간 등 물리적인 외부 변화에 반응하지 않는 요소도 있다. 다양한 공간과 사람의 변증법적 관계라 생각한다. 페어몬트 엠배서더 서울 마리포사를 다녀왔다. 오후 6시쯤 식사를 시작하여 9시까지 공간에 머물며 노을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쏟아지는 빛과 지나가는 바람이 적절히 조율되어 공간을 멋스럽게 변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황금빛이 들어와 금속의 반짝임을 더했고, 붉은빛으로 변해 객체 하나하나에 집중과 열기를 주었으며, 어두운 푸른빛으로 하늘과 동등하게 열기를 덜어낸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페어몬트 엠배서더 서울 마리포사 실외 - <페어몬트 엠배서더 서울 공식 홈페이지>
실내 바 미디어월, 노을에 반짝이는 모습을 연출  - <페어몬트 엠배서더 서울 공식 홈페이지>


개인의 일상은 작은 발견과 상상의 무한 교차를 통해 특별한 경험이 되고, 나의 직업은 이러한 개인의 경험이 중요한 모든 이들에게 빛과 바람이 보이도록, 만지도록, 들리도록 구체적 공간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4.3그룹의 건축가 민현식은 바람과 빛 등 고정되어 형상이 없는 자연 요소를 재발견하고 이들 사이의 조응이 만들어 내는 감각적 풍요를 지각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우리는 이 집이 항상 새로운 경이에 차 있음을 안다. 매일 다른 빛의 질에 따라 어느 날 푸른빛은 그날만의 푸른빛이며, 다른 날 그 푸린 빛은 또 다른 그날만의 푸른빛이다. 아무것도 고정되는 것은 없다. 건축이란 고정되지 않은 변화의 세계에 등장하는 고정된 상수로서 고정되어 있기에 이를 통해 감각적 변화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 p.124 발췌

순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 구체적 의미로 가득 찬 소리를 듣는 것, 순수 빛을 보는 것이 아닌 구체적 의미로 가득 찬 빛을 보는 것, 그 의미를 주변에서 찾아보았다.


기차역과 빛, 동대문 청계천
혼합된 시간과 사람, 성수역
숲과 도시, 압구정
골목길과 회오리, 동대문


상상이란 허구의 세계와 일상을 접목시켜 구체적인 빛과 형태로 나타낸 실제 공간들도 있다. 주로 상업공간과 호텔 객실, 전시공간 등이 그 집약체이다.




실험적 상업공간


시간을 설계하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쿄의 Nakasa & Partners는 도심 속 24시간을 풍요롭게 이용하기 위한 트랜짓 서비스( 일과와 일과의 사이, 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의 서비스)를 통해 수면과 샤워만 할 수 있는 9 hours 캡슐호텔을 설계하였다. 효율적으로 낭비하는 시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 풍족한 일상을 추구하고 짧은 잠을 잘 수 있는 '가수면'플랜도 설계해주었다.


9 hours 호텔, 도쿄


서울에서도 상업공간에 머무는 특정 시간을 활용하여 상상이 극대화된 또 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의 공간 브랜딩을 살펴볼 수 있다. 허구와 상상을 추상화, 개념화, 정량화, 계량화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공간들의 첫 번째 예시로, 하우스 도산은 퓨처 리테일을 콘셉트로 폐허에 인공위성을 놓은 듯 한 모습, 강렬한 색감과 거침없는 사선 동선 등으로 판매 공간보다 체험공간으로 서비스 영역을 제공했다. 공간 안의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퓨처 리테일,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작년 8월에 오픈했던 디스트릭트(d'strict)의 파도 미디어 전시이다.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파도를 눈으로 귀로 경험하는 것뿐만 아닌, 바다 내부로 들어온 착각을 불러이르켰다.  


에이스트릭트, 디스트릭트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놀이하는 사물' 전시관이다. 파빌리온 형식에 실버 시트지를 얇게 부착하여 바닥과 벽을 모두 메탈릭한 소재로 통일감을 주었다.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물성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놀이하는 사물 , 과천 현대미술관


한남동 하우스 오브 구찌 1층 내부 전경이다. 과천 현대미술관 전시와 같이 새로운 매탈릭 타일과 패널로 포인트를 주었고, 상부층의 강한 색감의 공간으로 소재의 대비를 보여주어 층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우스 오브 구찌


근래 서울에서 소위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지향하는 상업공간과 전시공간을 어떤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제한된 시간으로 기업의 가치를 홍보하며 순수 감각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공간을 체험하는 경험을 설계하거나, 시간과 공간을 운영방식에 따라 개인이 조율하며 선택하는 과정을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분류 및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심 속 '사람'과 '시간'의 관계는 공간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으며, 순수 감각의 경험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상업 및 전시공간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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