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불합격 문자를 받고

by 미라지

언젠가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난 너 키울 때, 니가 천재인 줄 알았어."
뜬금없는 고백에 여쭤봤습니다.
"뭘 보고 그러셨대요?"
"혼자 한글 깨치고, 피아노며 미술이며 시키면 선생들이 전공하라 그랬지."
"그땐 참 좋으셨겠네."
함께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당해서 웃었지만, 엄마는 조금 슬퍼 보였어요. 요즘 말로 '웃프셨던' 거죠. 제가 대학생 때였는지,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씀의 속 뜻을 이해할 나이였던 건 분명합니다.

말귀 밝았던 큰 딸을 키우며 엄마는 으쓱하셨나 봅니다.
우리 딸이 스스로 글을 읽더니 학교 가서는 칭찬을 받아 오네, 하고요. 제 외할머니는 장사를 하느라 바쁘셔서 엄마와 시간을 많이 못 보내셨다지만 엄마는 저를 키우며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으셨으니 기대도 많으셨겠지요.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 엄마는 웃프셨을 겁니다. 지금 저는 평범한 주부일 뿐이니까요. 요즘 세상에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으니 제 포지션에 만족합니다. 어쨌든 전 그때 깨달았습니다. 천재는 무슨, 기대와 착각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요. 그리고 제 아이를 키울 땐 기대와 착각을 구별하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아이는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어제가 결과 발표일이었는데 오후 다섯 시쯤 문자를 받았어요. 결과는 불합격이었지요. 합격자만 통보할 수도 있을 텐데, 불합격자에게도 문자를 보내주는 기관의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결과를 보여주며 아이에게 말했어요.
"야, 너 안 뽑은 건 그쪽 손해라고 생각해. 우리 아들 같은 인재를 안 받다니."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건 아닐걸요."
저는 너 정도면 천재지, 하려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제 알 거 다 아는 아이에게 그런 말은 위로가 안 될 테니까요. 그러고는 그 옛날 엄마와의 대화가 떠올랐어요. 저를 키울 때 엄마가 했던 착각을 지금 저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었죠.

이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착각 좀 하면 어떤가요. 나중에 실망 좀 하면 어떤가요. 저는 그저 우리 아들이 최고라 생각하고 살렵니다. 어차피 그 애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말고 없을 겁니다. "네가 최고야"라고 진심으로 생각해 줄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은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러니 저라도 그렇게 믿고 지낼 겁니다. 다만 '아들 바보' 소리를 듣는 건 쑥스러워서, 우리 아들이 천재란 건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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