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자고 방송하잖아요. 학교에서 그림도 그리고, 돈도 모으고요. "
"그러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보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요? 이미 세계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지구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굶어 죽는 이들이 있는 걸까요? 이 문제를 다룬 가장 책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사회학자이자 기아문제연구자인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일 겁니다. 1999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후 우리나라에는 2016년 개정증보판이 나와 있는, 여전히 널리 읽히는 책입니다. 아들 카림과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를 조사했던 저자가 겪은 참상은 충격적입니다.
기아는 아프리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책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7분의 1 정도가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는 중이고 아프리카의 상황이 특히 열악하지만 숫자로 따지면 아시아에 기아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4초에 1명씩 굶어 죽었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이었어요. 농촌 지역뿐 아니라 제3세계 대도시와 그 주변의 빈민촌도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이제 지구상에는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다(1984년 기준, p.51)"는데 기아 인구는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아의 원인으로는 전쟁, 자연재해, 정치 부패, 시장 가격 조작 등이 있다 합니다.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건 지리나 기후 이유 때문이 아니었어요. 부패한 정부가 농민을 착취하여 농산물을 헐값에 사들인 후 다시 선진국에 팔아넘겨 이득을 취한다고 합니다. 부패와 내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매섭게 비판해요. 식량은 인간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되어야 하지만, 금융자본주의를 도입한 선진국이 곡물 등 대부분 농산품의 수요 공급을 조절하며 시장 가격을 조작하는 게 문제라고요. 농산품으로 투기를 하는 거지요.
곡물 가격은 선진국의 몇몇 금융자본가들에 의해 변동되는데요, 시카고 곡물거래소의 경우 남는 식량을 거대한 탑에 보관하거나, 대량 폐기하거나, 법률적 조치를 하여 공급량을 조절한대요. 가난한 나라들은 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곡물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겠지요. 농산품 가격은 선진국 투기꾼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가난한 나라의 정부는 투기꾼들이 정하는 가격을 지불하지 못해 식량이 부족해집니다.
선진국이 의도를 가지고 가난한 나라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진국이 자국 농산물을 싼 가격으로 가난한 나라에 수출해 그 나라 농업경제를 파탄 내는 경우는 흔합니다. 심지어 선진국은 가난한 나라의 개혁을 막으려고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내정에 은밀히 간섭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아옌데와 상카라가 살해된 뒷 이야기를 들려줘요. 칠레 대통령 아옌데는 자국 어린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하면서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와 미국의 반발을 샀고, 부르키나파소 지도자 상카라는 토지 국유화 등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개혁을 펼쳐서 프랑스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선진국들은 못 사는 나라들이 발전하는 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자국 영향력이 약해질 테니까요. 두 사람은 모두 살해됩니다.
기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없는 걸까요. 저자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p169)" 고 말합니다.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국제구호단체의 활동은 분명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빈국에 도착한 구호물자가 부패한 정부와 지배층의 주머니로 들어가 버리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결국 국민이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변화시켜야 하고, 가난한 나라의 인프라를 정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UN 기구와 위원회들이 저개발국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세계은행이나 IMF, WTO는 극단적인 민영화와 규제 철폐로 가난한 나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해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반인권적이며, 더 나은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조 등의 민간단체들이 전 지구적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장 지글러는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하면서 "기아의 고통 앞에서 무심해지지 않기를(p.185)" 당부해요. 타인을 돕는 건 어디까지나 고통받는 인간을 구하기 위한 것이어야지,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의 이익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기아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배우는 것을 넘어 국제 문제, 신자유주의, 인류애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게 도와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