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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Dec 31. 2019

머뭇거리지 않고 쓰기

내년 목표다.

세밑이다. 올해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라 하면 브런치 북 발행이라 답하겠다. 에이 설마.... 하고 다시 생각해 봐도 그렇다. 주부이니 살림을, 학생이니 공부를 했지만 그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였다. 글 쓰기는 달랐다. 아무도 나에게 쓰라 하지 않았는데 시간 나는 대로 혼자 틀어박혀 글을 썼다. 브런치 북 공모전이 열린다기에 응모도 했다. 마감일 밤 불안정한 노트북을 부여잡고 가슴 졸였던 경험이 짜릿했다. 생전 자랑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건만 브런치 북만큼은 여기저기 링크를 보내 알렸다.

 

12월에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읽을 이를 염두에 두고 쓴다는 게 참 어색했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깨닫는다. '아,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나뿐이구나' 하고. 글을 쓰려니 마치 사춘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남들이 날 쳐다보는 것 같고 예뻐 보이고는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모임에서 덩그러니 혼자 있다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진짜 모임이면 나는 어색하기 짝이 없더라도, 일이 주 정도는 말 안 하고 살 수 있는 내향성을 잠깐 내려놓고 입꼬리를 올리며 날씨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려니 막막했다. 읽는 이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우선은 많이 써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해야 말이 늘듯 써야 글이 늘 터였다.


재주도 없이 왜 글을 쓰려하는지 자문자답을 다. 그동안 나는 아이 키우던 지난 십여 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생각다. 투정 같아 보일까 봐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퇴사하고, 아이 낳고 키워서  꿈꾸던 4인 가족을 이루었지만 나는 몸인지 정신인지 어딘가가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깨어진 항아리를 이어 붙였는데 어딘가 틈이 있어 계속 흘러나가니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기분으로 지냈다.


지난 11월, 아이 키우며 읽었던 책에 대해 쓰면서 그 틈새 조금 메워졌다. 아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책에 밑줄 쳐둔 부분을 다시 읽었다. 글은 지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는 소박하나 결정적인 증명이었다.  더 다듬어서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로 만들고 싶다. 내년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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