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 머무르는 이

연말 송별회

by 미라지

서울에서 쭉 살았다. 결혼 전 살던 동네, 결혼 후 살고 있는 동네, 두 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기도 쉽지 않다는 걸 커서 알았다.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살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게 안정이라면 지금 내 삶은 안정의 극치다. 직장이 없으니 출퇴근도 없고 맘만 먹으면 동네 안에서 장 보기를 해결하며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지낼 수도 있다.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안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척 소극적인 태도다. 주변 사람들은 자주 옮겨 다닌다. 주로 본인이나 배우자의 이직, 아이 교육, 재테크 때문이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거나 어려워져 주거지를 옮기기도 한다.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안정되어 있는 사람들 중엔 아이 교육을 위한 이동이 많다. 강남, 제주, 동남아시아, 하와이, 호주, 미국.... 우리 동네로 이사 오는 집들도 있다. 내신 경쟁이 덜 치열한 고교를 찾아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처음 등장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수만 년에 걸쳐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중동과 아시아로, 베링해협을 건너 남아메리카까지. 당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 베링해협은 지금처럼 깊지 않았다고 하니 이동이 가능했다 해도, 오세아니아 대륙 끝 군도까지 인류가 퍼져나갔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그 옛날 카누 같은 걸 만들어서 망망대해를 건넜을 거라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겁이 없다.


미국이 제도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개척정신에서 찾는 글도 봤다. 자유와 권리를 찾아서든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든 이민자들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 기회의 땅을 찾았을 것이다. 개척시대 서부는 개간을 장려해 이민자에게 토지 소유권을 주었고, 토지를 얻은 이들은 도구를 개량하고 필요한 기계를 적극 도입했다. 정착에 성공한 이들은 영국을 몰아냈다.


그러고 보면 이동은 본능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오는지도 모른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실행이 답'이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머물러 있어도 될까? 올 연말에도 들고나는 이들을 보면서 15년째 한 곳에 사는 게 행복인지 나태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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