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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Jan 15. 2020

노들서가 집필실에 기증한 책

진짜 기증하게 되다니... 감사합니다 :D

올 초 노들서가 집필실 일상작가 2기에 지원했다. 신청서에는 '일상 작가의 서재'에 기부할 책 다섯 권을 적는 칸이 있었다. 만약에라도 선정된다면 손때 묻은 내 책을 기부해도 될지,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를 새로 구입해 내는 것이 나을지 잠시 고민했다. 기증의 취지는 '나눔'이기도 하고 독서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 갖고 있던 책 중에서 골라 적기로 했다.

삼사 년 전 집 벽 한편에 선반을 설치해 내 서가를 만들었다. 옷장은 아이와 함께 쓰고, 침대 없이 세간 사이에서 이불 깔고 잠들지만 그 선반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다. 고심 끝에 고른 책으로 채우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요즘은 (특히 여자들이) 애장품을 소개할 때 "요 아이는요~"라는 표현을 쓰던데, 나에게는 백여 권의 '아이들'이 있다. 나는 저자가 곧 책이라 생각하기에 감히 '아이'라 부르진 못하지만.


서가 앞에 서서 1. 신간이면서 2. 기억에 오래 남았고 3. 줄을 치지 않은 깨끗한 책을 고르니 아래 다섯 권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2기 일상작가로 정말 책을 기증하게 되었다. 책이란 워낙 취향을 타는 물건이지만 내가 읽었던 책이 많은 분들께 닳도록 예쁨 받았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큰 인기를 얻은 김영민 교수님 에세이집. 개인과 사회 이슈를 자유롭게, 무겁지 않게 써서 좋았다.  신선한 비유, 만화 같은 상상력이 놀랍다. 내 친구였다면 "사차원이군" 소리 들을 유머를 정외과 교수님께서 구사하시다니. 뒷부분에 실린 저자의 영화 평론은 너무 어려워서 내게 좌절감을 줬다.  


"지나간 학창 생활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어떠한 것이든, 일희 일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어크로스. p.115


"화장실에서 홀로 변비를 신음하며 자시의 개인적인 똥을 공공의 변기로 흘려보내듯, 기표소에서 홀로 얼룩진 현대사를 신음하며 자신의 한 표를 공화국의 식도로 흘려보내야 한다. 이 고독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사적 개인을 넘어 마침내 공화국의 시민이 된다." 위의 책, p. 167


여행할 땐, 책
여행과 책을 사랑하시는 김남희 작가님의 2019년 신간. 낯익은 몇몇 작품이 수록되어 여행과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했다. 나는 책은 사랑하지만, 체력이 달려(혹은 게을러서) 여행은 즐기지 않는다. 흔히 여행 작가를 꿈의 직업이라고들 하던데, 고행과 깨달음과 행복은 다 비슷한 걸지도. 나는 평생 못 가볼 곳을 아름다운 비유와 문장으로 소개해 주시 감사하다.


"이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여행이 매혹적인 이유는 여행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이 그러하듯. 낯선 곳에서 어떤 만남을 통해 얼마나 변화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채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계속하는 한 내 마음의 지도는 날마다 달라진다." 여행할 땐, 책, 김남희, 수오서재. p. 250.



디아스포라 기행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교수가 일본인으로도 한국인으로도 살아가지 못하고 디아스포라로서 겪는 고통을 여행기 형식으로 써 내려갔다. 그는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사회와 예술을 통해 디아스포라 삶을 탐색했다. 한국에서 날조한 간첩 사건에 연루된 그의 형 서승, 서준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역사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이산의 고통, 국가폭력,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던, 무겁고 힘들었던 책이다.  


"개인들은 운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다.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 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의 숙명성을 견뎌 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돌베개. p.61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한때 현실 도피 반 허영심 반으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 적이 있지만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상상으로 끝났다. 돌아보면 다행이다. 괜히 가방끈을 늘릴 뻔했다. 나의 선생님이자 친구인 책에 의지해 지내면 되는데 말이다. 저자 한기호 대표님도 대학원보다는 집필을 추천하신다. 저자, 물론 나도 되고 싶다. 하지만 먼저 배우고 공부해서 내 생각, 내 주관을 갖는 것이 먼저겠다.


"오솔길을 찾았으면 그 분야에 대한 100권의 책을 읽어보자. 100권만 읽으면 입문서부터 전문서까지 웬만한 책은 모두 읽을 수 있다. (...) 그런 준비를 하면 가능성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한기호, 북바이북. p.215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현대 부국과 빈국 면면은 현대사를 살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포용적이거나 착취적인 정치 경제 제도를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줄 치며 열심히 읽은 후 새 책으로도 간직하고 싶어 한 권 더 산 것을 기증하기로 했다.


"역사의 흐름은 숱한 우연에 부딪혀 방향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그 제도의 포용성이 지속적인 발전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시공사.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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