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왜 총이 있어요?

연방대법원 판결로 보는 미국 사회 ,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by 미라지

아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가 본 적도 없는 나라 사정을 어찌 알았는지 제게 묻더라고요.

"미국은 왜 잘 살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왜 미국 사람들은 총을 갖고 다녀요?"

"글쎄다."

미국인들에게 총이란 어떤 의미인지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현암사) 은 우연히 찾은 보물이었습니다. 「총기 소유는 불가침의 권리인가」라는 소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지요. 1789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최고 사법기관인 연방대법원이 다룬 판결 중 31가지를 골라 배경과 내용을 소개합니다. 건국부터 최근까지의 미국 역사, 정치, 사회를 간략히 훑고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살필 수 있었던 책입니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가 허용된 과정을 잠깐 볼까요. 미국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척박한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러 이주해 온 영국인들에게는 총이 필요했습니다. 야생 동물들과 인디언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요. 이어 영국과 독립 전쟁을 치르고 미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총기 소유는 점차 개인의 기본권과 정부에 대한 저항권을 상징하게 됩니다.


1791년 미국 수정헌법 2조에 '무장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면서 국민의 무기 소유는 헌법상의 권리로 자리 잡습니다. 당시 주 정부는 연방 정부가 각 주의 무기를 빼앗고 시민 민병대를 해산시킬 것을 우려해 수정헌법에 '무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시켰습니다. 즉 이 조문은 주 정부가 자주권을 지키고 연방 정부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넣은 겁니다. 200여 년이 지난 후, 이 조문을 두고 해석을 달리하는 대법관들 사이 불꽃 튀는 토론이 벌어지게 됩니다.


총기 소유와 관련해 책에 소개된 판결은 '2008년 워싱턴 특별구 vs 시민 켈러' 사건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강력 범죄율이 높은 워싱턴 특별구에서는 총기를 엄격히 규제했는데, 규제가 지나치다며 반발한 '헬러'라는 사람이 워싱턴 특별구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워싱턴 지방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지만 항소 법원은 이를 번복해 헬러의 편을 들어주었고, 시 당국이 상고를 결정하면서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갑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치열한 토론 끝에 연방 대법원은 5대 4로 헬러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개인의 총기 소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판결한 겁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작동될 수 없는 상태로 총기를 보관하도록 강제하는 워싱턴 법령은 시민들이 유사시 자기 방어의 목적을 위해 총기를 사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헌이다.(p.68)"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헬러는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소지하고 싶어 하던 종류의 총을 손에 넣지는 못했답니다. 워싱턴주는 판결에 따라 총기 단속 규정을 개정했지만, 반자동 피스톨을 개인 총기를 넘어선 기관총으로 규정해 금지시켰기 때문이지요. 엽총이나 권총은 가능해도 기관총 소지는 안 된다는 조치에 헬러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방법원에서 기각했다는군요.

이 밖에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지 짐작이 가시는지요.


국기를 태우는 것은 국가 모독일까, 표현의 자유일까?

모르몬교 신자의 일부다처는 가능한가?

학교 측이 교직원에게 '공산당 등 특정 단체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도 될까?

직장 내 성희롱이 일어난다면, 회사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까?

판결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중에서도 표현‧사상의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종교, 인종, 총기 사건에서는 미국 사회의 특수성이 드러납니다. 낙태, 안락사, 동성애 등 개인의 기본권을 다루는 사건들은 한국에서도 제기된 바 있고요. 부당 내부 거래나 저작권 문제처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도 처리해야 하니 현대 사회에서 법원의 역할은 새삼 더 중요해 보입니다.


역사의 오점으로 남은 판결도 등장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판결이었겠지요. 노예는 인간에 포함되지 않기에 소송을 낼 자격조차 없다는 1857년의 '스콧 대 샌포드' 판결,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본토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 거주 지역에 강제 이주시키는 조치에 손을 들어준 '코마레츠 대 미합중국 정부' 판결이 그 예입니다. 또한 2000년 미 대선 당시 고어가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위헌이라고 판결한 '부시 대 고어' 사건은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대법관의 성향에 따라 법 해석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사회가 변해도 법은 문구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법관, 법 해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진보적인 법관. 상반된 시각을 가진 그들은 논리를 따져 다투면서도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만장일치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논리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기르려는 중고등학생들의 토론 교재로도 쓰일 수 있다"는 추천사에 적극 동의합니다. 어려운 법률 용어 없이 판례의 핵심을 '프롤로그 - 판결 - 반대 의견 - 에필로그'로 압축해 읽기 쉽습니다. 같은 저자의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현암사) , 얼마 전 출간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헌법재판소 결정 20』(현암사) 도 재미있어 보여 리스트에 올려 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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