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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1주년. 눈물 콧물로 얼룩지다.

by 안개꽃

결혼 11주년이 지난 지 사흘이 되었다. 그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해야겠다 싶으면서도 선뜻 시간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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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시작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서로서로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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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20년을 살고 떠나온 토론토에 열흘 동안 다녀왔다. 아이 둘을 데리고 5시간 가는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도착해 렌터카를 운전해 시댁으로 갔다. 열흘 동안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친구들도 만나고, 시부모님과 내 동생들도 만나고, 볼일도 보고 (우리가 토론토에 간 메인 이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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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고 이틀 후가 우리 결혼 기념일 이였다. 어느덧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다. 연애는 5년을 했으니 우린 16년째 함께 하고 있다. 예전에 5주년과 6주년이었나,, 한 두 번은 연속 둘 다 까먹고 패북이 알람으로 알려줘서 간신히 기억하고 넘어간 적도 있었다. 뭐한다고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결혼한 날을 까먹다니.. 서로 어이없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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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남편은 우리가 토론토에 가서 쓴 여행 경비를 분석하고 있었고, 나는 밀린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서류들을 다시 검토해서 버릴 건 버리고 모아 두어야 하는 건 지정된 폴더에 넣는 일이었다. 남편이 먼저 여행 경비 분석 자료를 끝냈다. 나에게 펜을 가지고 유리 보드에 자기가 불러주는 숫자를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나 지금 바쁘니깐 네가 직접 하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의 논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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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본인이 지금 막 끝낸 자료 분석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 것이다. 나는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서류 정리를 먼저 끝내고 싶었다. 남편은 나에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서류 정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그 일을 해야 하는 큰 그림을 이해하고 해야 하는데 내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어차피 서류 정리는 해야 하는 일이고, 물론 나도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으며, 불만이 있거든 네가 직접 하던지 하라고 했다. 우리의 감정싸움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나는 남편이 비겁하게 내가 맡아하는 영역의 부족함을 상기시켜 본인이 우월하다는걸 증명해 보였지만, 진심은 지금 당장 본인에게 집중해 주길 원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진심으로 원했던걸 말하면 되었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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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7살인데 이날 늦은 오후, 우리의 싸움이 좀 진정 됐을 때, 한마디 했다. 하필 다른 날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결혼한 날 싸우는 건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너 말이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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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6개월 전 동시에 회사를 퇴사했다. 어찌어찌하면 우리 집 가게가 굴러갈 것 같으니 지금 당장! 시도해 보자며 서로 으쌰 으쌰 해서 내린 힘든 결정이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이른 은퇴와도 연결이 된다. 우린 지난 3년간 매우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와 주식 투자로, 굉장히 빠른 자산 증식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의 감정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남편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우리 가정이 지금처럼 살게 된 것에 대한 기여도는 반반이 아니고 본인에게 더 있다는 것이다. 결혼 11주년에 들어야 하는 말 중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반반이라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 인생 파트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앞으로도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을 거란 결론에 다르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서러움과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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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 너 말이 맞아하고 가만히 수긍할 수 없었다. 남편의 연봉은 나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최근 몇 년간 연봉을 10을 벌었다면 남편은 15-18을 벌었다. 물론 남편은 연봉의 차이 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남편은 천상 리더이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다. 나는 평화 주의자이다. 웬만하면 남편이 원하는 걸 따라 주는 편이었다.

남편이 미니멀 리스트가 되겠다고, 온 집안의 물건을 뒤집어엎고, 집안의 물건을 60-70%을 내다 버리자고 할 때도 괜찮았다. 같이 동참해서 도와줬고, 내 물건이 아깝다고 절대 할 수 없다고 싸우지 않았다.

남편이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적극 동참했다. 부동산 사이트를 같이 공부하고, 이제 막 태어난 둘째를 데리고 다녔다. 세입자를 들일 때 광고와 인터뷰, background check 도 거의 내가 도맡아 했다. 무엇보다 은행 융자는 남편의 연봉만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와 부부 동반으로 서류가 들어갔고, 모든 부동산 등기에도 이름이 둘 다 들어가 있다. (법적으로라도 반반의 권한이 있어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내가 하는 일이 남편회사보다 일하는 시간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아이들 학교와 데이케어 픽업과 드랍은 항상 내가 했고, 요리와 도시락도 내 담당이었다. 내가 남편처럼 더 집중해서 일했다면 돈을 더 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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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편에게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설명해 줘야 했다. 너의 생각이 왜 틀렸는지를.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룰 수 없었다. 남편은 토론을 좋아하고 납득이 가는 설명을 들었을 땐 인정한다. 나는 남편의 로직의 오류를 잡아내고 네가 지금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 지를 설명해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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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본인이 리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난, 내가 평화롭게 남편의 의견을 지지해 줬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의 생각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갭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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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가정을 들어 설명했다.

난 어떻게 살았어도 행복했을 사람이다. 지금처럼 돈이 많지 않았더라도 현실에 만족하고 지냈을 거다.

물론 내가 남편의 미니멀리즘과, 요가 활동과, 명상 시간, 무엇보다 높은 연봉을 이른 나이에 포기하자는 선택을 받아들인 건, 내가 할만했기 때문에 한 거고, 또한 어떤 부분은 나도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쉬웠던 건 아니었다. 미니멀리즘은 과한 듯해 보였고, 요가와 명상은 본인이 하는 건 좋은데 그동안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내 상황은 싫었다. 독박 육아가 싫었던 거지, 남편이 원하는 걸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인간 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고, 개인의 행복은 각자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너무 내 행동의 의견을 달면 반갑지 않아 했다. 남편은 집안이 깨끗한 건 좋은 것 아니냐. 책을 많이 읽자는 것도 좋은 것 아니냐 하면서 설득한다. 좋지. 좋은데 강요는 안 좋다 라고 말해도 어쩔 땐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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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편의 상황은 다르다고 했다. 우리가 5년 연애하고 결혼할 당시 남편은 지금과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잘 나가고, 더 많은 걸 가지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예전으로 돌아가, 그런 상태에서 결혼 상대를 고른다면 나같이 남편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요가와 명상을 많이 하고, 연봉을 포기하자고 할 때 수긍할 사람보다는 많이 벌면, 명품도 좀 살 수도 있고, 도시 생활을 즐기기 때문에 이런 시골로 절대 이사 갈 수 없어하는 사람을 만나, 매번 엄청만 반대에 부딪혀 남편 본인이 괴로움에 빠질 확률이 더 높지 않았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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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이렇게 큰 문제없이 본인이 구상하는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던 내 공로를, 남편보다 연봉이 적었다고 해서, 또는 남편보다 더 쎈 리더가 아녔다고 해서, 나의 기여도를 반이 안된다고 어찌 말할 수 있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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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로맨틱함은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논쟁이었다. 여기서 남편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난 이런 상처를 안고 계속 파트너쉽을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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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남편은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본인이 내뱉은 말을 창피해했다. 하지만, 내가 받았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정말 진심으로 본인의 생각이 틀렸고, 나에게 정말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나도 괴로워해서 우리의 결혼생활이 위태로울까 봐 하는 말인지 의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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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데 아직 마음이 쓰라린 걸 보면 상처가 아직 덜 아물었나 보다. 그래도 난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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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가 다른 날도 아닌 우리 결혼기념일에 일어나게 되어 더 의미 있지 않았나 싶다. 마음속 어딘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결혼기념일에 털어놓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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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정정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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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다. 같이 가야 할 날이 너무나도 길다. 결혼 11주년 이면 오래 같이 산 것 같지만, 우린 아직도 서로를 잘 모르는 두 인간이며, 책임져야 할 어린 두 자녀가 있고, 서로 잘 맞춰 나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는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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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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