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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Nov 08. 2021

열흘 명상을 다녀왔다

10월 20일-31일

지난 일요일, 할로윈 데이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벌서 5일이 지났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열흘이 펼쳐질지 몰라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떠났던 길이였다.

떠나는 날엔 비가 많이 왔고, 초행길이라 긴장하면서 운전했다. 우리 집에 차는 하나인데 내가 차를 가지고 열흘이나 떠날 수가 없어, 애들 둘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가는 길엔 내가, 돌아갈 땐 남편이 운전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해 가야 하는 곳이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고, 고속도로를 나와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있는 산장이었다. 총 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50명 조금 안되게 신청자를 받았다.


규율은 이미 여러 번 이메일과 웹사이트를 통해 숙지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흘간 말하지 않기. 혼잣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새벽 기상이었다. 꼭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침식사 시간 6시 반 전까지, 4시 반부터 두 시간 동안 명상 홀에 모여서 명상하거나, 자기 방에서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나를 걱정시켰던 식사 관련 스케줄. 아침은 6시 반. 점심은 11시. 저녁은 없음 (5시에 가볍게 과일과 생강차가 있었다.) 배고파 고생할까 봐 걱정했었다.


참가비는 없다. 모든 비용은 이미 이 명상 코스를 들었던 사람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나도 마지막 떠나기 전에 후원금을 내고 왔다. 후원금도 좋지만, 직원이 없고 모두 봉사로 명상원이 운영되기 때문에 봉사를 하러 오라고 많이 강조하기도 했다.




드디어 남편과 아이들과 헤어지고, 핸드폰과 지갑을 센터에 맡긴 후, 텅 빈 일인실 방에 혼자 앉았을 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열 한밤을 이곳에서 지낼 거란 말인가.. 떠나오기 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중간에 포기하고 전화하면 바로 데리러 와야 해'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 좀 있다 첫 저녁을 준다는데 어떤 음식을 먹게 될까 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도착한 날이라 명상은 없었고 가벼운 야채수프를 저녁으로 주었다. 이게 앞으로 열흘간 내가 제대로 먹은 마지막 저녁식사가 되리라곤 미처 깨닫지 못하고 맛있다고 먹은 것 같다.

다음날 새벽 4시가 되니 종소리가 들렸다. 첫날은 긴장으로 4시도 전에 여러 번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 종소리를 듣고 화장실로가 대략 세수와 양치를 하고 4시 반에 맞춰 명상 홀에 갔다. 아직 선생님에게 명상 테크닉을 배우기 전이니 뭣도 모르고 지정해준 내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보았다.

집에서 이곳으로 오기 5일 전부터 아침에 10분간 명상을 해서 그런가, 최대로 눈감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었다. 꽤 오래 한 거 같은데 시계를 보면 겨우 십 분이 지나 있었다. 이런식로 첫 한 시간을 겨우 보내고 새벽 5시 반에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아침 두 시간 명상은 옵션으로 홀에서 하거나 방에서 하거나 이기 때문에 방에 와 누우니 스르륵 다시 잠에 들어 버렸다.


아침 6시 반, 다시 종소리를 듣고 잠에 깼다. 아침 먹으라는 소리였다. 센터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조용하다. 아침 먹는 스케줄을 잘못 알고 조금 늦게 갔더니 오트밀은 거의 없었다.

아침 메뉴는 물에 끓인 오트밀, 요거트, 견과류, 꿀, 대추 조린 것, 시리얼, 우유, 바나나, 오렌지, 사과, 각종 티, 견과류 잔뜩 들어간 고급 식빵, 땅콩버터 (직접 만든 것 같았다), 딸기잼 등으로 준비되어 있었고,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같은 메뉴였다. 아침을 먹고 가벼운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비씨 주인 이곳은 겨울에 토론토 보다 눈이 덜 오는 대신에 우기가 시작해서 비가 추적추적,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 많다. 나는 떠나오기 전에 우산을 챙길 것인가 말 것인가, 운동화 외에 장화를 챙길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했는데, 남편 말이 우산은 그곳에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해서 짐을 정말 가볍게 챙겨 왔다. 다행히 코스 중반까지 날씨가 비도, 눈도 안 오고 가벼운 패팅 잠바를 입고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드디어 첫 그룹 명상 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식사 후, 오전 8시 반. 고엔카 선생님이 생전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녹음해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강당 중안에,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명상을 하고 있는  assistant teacher라고 불리는 선생님이 있다. 그렇게 한 15-20분 목소리를 통해 명상 코칭을 듣고, 나머지 40분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집중 명상에 들어간다. 9시 반이 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갖은 후, 11시 점심시간 전까지 홀에 남아서 명상을 하거나 방에 돌아가 명상하는 시간이 되는데, 보통은 9시 반부터 10시까지 또 고엔카 선생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거나, 중앙에 앉아 있는 선생님과 앞으로 불려 나가 짧은 질문과 대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새벽에 한 시간, 아침 먹고 두 시간, 벌써 점심도 먹기 전에 세 시간을 앉아있게 되었다. 헐.. 남편이 분명 그룹 명상시간은 꼭 가야 하는 거니깐, 아침에 한 시간, 점심 먹고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 이렇게 세 시간만 꼭 해야 하는 거고 나머지는 옵션이라고 했는데... 점심도 먹기 전에 세 시간을 앉아 있었다. 이거 왠지 속은 기분이 자꾸 든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늘 하루도 긴데, 앞으로 열흘을 어떻게 버티지?라는 절망감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날 저녁, 어제 먹은 야채수프를 떠올리며 5시에 식당으로 갔다. 내 눈에 비친 건, 바나나와 오렌지, 사과가 들어있는 바구니와 생강을 잔뜩 넣고 끓인 큰 냄비였다. 순간 엄청 당혹스러웠다. 아.. 저녁이 없다고 했었지..

바나나 하나, 사과 하나를 저녁으로 먹었다. 첫날은 왜 명상을 많이 하려면 속을 조금 비우는 게 좋은지 이해하지 못하고 배고파하면서 잠들었다.




2일째 되는날. 여기서 잔 지 두밤이 지났다. 새벽 4시 반에 홀에 가서 억지로 한 시간 앉아있다 다시 방으로 와서 잠들고, 6시 반에 일어나 이침 먹고, 8시 반에 다시 첫 그룹 명상을 하러 갔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고엔카 선생님 챤팅을 듣고 있는데 눈물이 흐른다.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동받은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고, 기분을 설명할 수 없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모두 다 눈을 감고 있었고 숨에 집중하느라 매우 조용한 가운데, 소리 없는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 시간 이후, 난 열흘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밤 9시 반이면 불이 꺼지고, 새벽 4시면 종을 치기 때문에 난 틈나는 대로 밖에 나가서 소나무 숲 산책을 했다. 조깅이나 요가도 포함하여, 걷는 것 외에 다른 운동은 모두 금지였다. 원래도 조깅이나 요가나 그리 열심히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몸을 최대한 피곤하게 하여 밤에 딴생각 안 하고 잘 자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멀리서 보면 좀비 여러 명이 조용히 서로 없는 사람 샘 치면서 걷는 모습이 호러무비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걷는데 2일째 되는 날 저녁 시간 산책에 남편이 준 손목시계에 진동이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꺼내보니, 8,000보를 걸어서 전자시계 화면에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폭죽을 보려 열심히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매 시간 단위로 쪼개어 열흘이란 시간을 버티고 나니,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은 아침 명상 후, 드디어 서로 대화해도 되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명상 홀에 반은 나가서 저 바깥에서 벌써 시끄럽게 웃으며 수다 떠는소리가 들려오는데, 남은 반은 명상 강당에 남아 조용히 앉아 있는다. 나도 바로 벌떡 일어나 나가지 못하는 그룹 쪽이었다. 막상 열흘 만에 입을 열려니 두려웠다. 왠지 지금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용기 내어 밖으로 나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에 자연스레 참여했다. 신기했던 경험은, 열흘간 서로 눈인사도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생긴 선입견이나 저 사람은 왠지 성격이 이럴 것 같다거나 하는 내 직감이 많은 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서로 소통을 할 수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 퉁명스럽다고 느꼈었다. 웬걸, 대화를 하기 시작하니 다들 엄청 성격도 좋고 서로 얼굴 보고 웃으니 이젠 다 착한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웃는 인상이 중요하구나 라고 느꼈고, 몸짓이나 눈짓이나 대화나 소통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어떤 사람인지 판가름 하기는 어려운 거라는 걸 배웠다.  


우리 동네에서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을 수소문해서, 돌아오는 날엔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왔다. 집에 오니 아침에 티비보던 아이들이 뛰어와 반겨준다. 서로 다른 의미로 고생한 남편과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돌아온 날인 일요일 아침은, 명상원 프로그램 신청 날이었다. 안 그래도 본인이 나를 데리러 간다면 그 신청 시간을 놓칠 텐데.. 라며 걱정했다던 남편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되게 되자, 바로 아침 8시에 광클릭을 통해 12월 1일부터 시작하는 열흘 명상 코스에 등록을 했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오자마자 한 달 후 바통 터치로 독박 육아를 하게 생겼다. 남편은 여건만 된다면 매년 열흘씩 이 명상 코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전 세계에 200개 정도의 같은 단체에서 운영하는 명상원이 있고, 한국에도 전주에 하나 있다.


https://korea.dhamma.org/ko/


분명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남편은 이곳에도 갈 것 같다. 내가 이번에 만난 사람 중 유독 어려 보이는 중국 여자분이 있어서,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어 왔냐고 하니, '사피언스' 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그 책에 유발 하라리가 이 명상원을 언급하여 자신도 알아보고 오게 되었다고 한다. 아 그렇지.. 돌아와 남편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그 책에서 보고 알아보고 토론토에 살 때 가게 되었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제 열흘 코스뿐만 아니라 30일 코스, 아마 그 이상도 하는 사람일 거라고 한다. 그 사람 때문에 이 명상원이 더 바빠졌을 듯하다.


집에 오는 길, 운전하던 마크 아저씨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본인은 세 번째 가는 거였는데, 처음 와본 나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그러더니 "아니야, 질문을 바꿔서 물어볼게. 너 여기 또 오고 싶을 것 같아?" 한다. 난, 아마 조만간은 힘들지 싶어요.. 했다. 그랬더니, 괜찮단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 또 하면 된다고.


돌아와 보니, 큰애 친구 엄마나, 옆집 사는 엄마가 너무나 내 경험을 궁금해했다. 사실 명상 보단, 다른 여러 좋았던 점들이 떠오른다. 첫째,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베지테리언 식단. 속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난 평소보다 저녁 먹는 양을 대폭 줄였다. 자기 전에 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자야 하지만,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해서 불편한 속으로 살았구나 싶다. 고기는 여전히 먹지만 조금씩 먹고, 야채수프를 만들어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 둘째, 핸드폰 강제 휴식기. 명상원에 등록할 때 입구에서 지갑과 핸드폰을 맡겼다. 이것도 의외로 좋았다. 인스타나, 패북, 다음 기사 읽기로 평상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쓰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많았을 것이다. 음식뿐 아니라, 전자 기기 클렌징 시간도 정말 좋았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약간!? 줄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조용히 혼자 만의 시간 갖기이다. 물론 50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였지만, 서로 소통이 없으니 혼자 산장에서 열흘 있으라 그럼 무서워서 못할 것도 같은데, 따로 또 같이 있는 느낌으로 안정적인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 속에 푹 빠져있을 수 있었다. 산책하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고, 부모님과 남편, 자녀들의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12월 1일 남편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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