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에서 은행으로.. (캐나다 이직 스토리)
때는 2016년 늦여름이었다. 캐나다에서 5번째 안에 손꼽히는 보험회사에서 보험과 투자 상담일을 하다, 은행으로 옮겨가 투자 상담만 해 주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캐나다에는 은행이 5개 정도 있는데, 모두 다 지원을 했다. 은행 경력이 없었고, 투자 어드바이저 경력만 있는 나로선 생각보다 인터뷰 연락이 오지 않아 소심해하던 중이었다. 안 그래도 투자 유치 최소 액수가 일 년에 50-60억부터 몇 년 차 되면 일 년에 새로운 투자 액수 100억을 조건으로 뽑아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며 겁먹던 중이었다.
드디어 한 은행으로부터 인터뷰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으로 갔는데 역시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완전 잘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한 인터뷰는 자신감 및 설득력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첫 인터뷰를 망하고 나니, 이 포지션에 내가 뽑힌데도 과연 내가 성공적으로 투자 상담가로서 적응할 수 있을지 더욱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은행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워낙 보험회사에서 은행으로 많이 이직하는 편이라 세일즈 경력을 무기 삼아 인터뷰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는, 전화 인터뷰를 30분 정도 앞두고, 고민 끝에 또 안될 것 같으니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인터뷰 취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 인사과 담당자가 내 이메일을 못 읽었는지, 30분 후 인터뷰 전화가 왔다. 당황한 나는 '어.. 내가 인터뷰 취소 이메일 보냈는데.. 미안한데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취소하려고 했다'라고 솔직히 얘기해 버렸다. 그럼 보통 이렇게 나오면 당근 '그래 그럼. 좋은 하루 보내고. 땡큐 포 유어 타임' 이러고 끊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담당자가 내 예상과는 달리, 그러지 말고 이렇게 전화까지 연결됐는데 잠깐 얘기나 해 보자면서 나를 설득하는 게 아닌가. 너의 이력서를 보니 네 경력이면 이 일과 완전 잘 맞는다면서, 자기가 어떤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들어보라고 매우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 30-40분의 통화를 마친 후, 직속 상사와 2차 인터뷰를 잡게 되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은행 본사들이 모여있는 곳에 어느 건물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후, 난 그렇게 은행으로 이직이 되었다.
은행에 취직한 지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만난 책이 있다. 바로 '될 일은 된다 (마이클 싱어)'이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인터뷰 취소 이메일을 보냈음에도 전화가 걸려오고, 솔직히 내가 이일을 잘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음에도 나를 설득해 준 인사과 담당자를 만나고, 또 무난한 상사를 만나서 편하게 일한 이 과정이 될 일이었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일이 이렇게 풀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뽑아준 이 회사에서 전문 투자 상담가들로 구성된 팀을 새로 만들어 인원 보충을 빠른 시간 안에 해 내야 하는 시기에 내가 지원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친절했던 그 인사과 담당자는 채워야 하는 새로운 경력직 직원의 할당량이 있었을 거라 상상해 본다. 뭐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나에게는 매우 잘 된 일이었다.
그렇게 약간은 어이없게 인터뷰 취소를 요청하고도 결국엔 취직하게 된 이직 스토리가 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저 액수를 어떻게 매년 새로 유치해와?라고 생각하는 그 일이 또 은행 조직 안에 들어가니 다 하게 된다는 점이 또 신기한 부분이었다. 은행 안에서도 밀어주고, 워낙 캐나다에 은행이 5개밖에 없어서 손님들이 돌고 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처음 인터뷰 때 감이 오지 않는 숫자만 보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2016년 늦여름 그때 이왕 이렇게 전화 연결이 됐으니 잠깐 얘기나 나눠보자는 그 제안을 어차피 안될 거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차갑게 거절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될 일은 된다'에서 읽은 내용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에 저항하지 말고 내맡기기를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고 깨달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