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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l 19. 2022

남편이 말했다. "넌 엄마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어제 남편과 어떤 대화를 하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커플들 결혼하고 애기 안 낳는 거 너무 이해돼.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지."

남편은 내가 종종 이런 말을 하는 편이라며 사실은 내가 엄마 역할하는 게 싫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물어왔다. 사실 물어 왔다기보다는 그렇다고 결론지어 본인이 생각했을 때의 나의 상태를 진단했다. 


글쎄 아이 안 낳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게 이해된다는 말이 그렇게 연결되나? 싶으면서 바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남편은 엄마 하기 싫다는 게/힘들어하는 게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건 또 아니니 내 마음 상태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라고 했다. 흠. 확실히 나는 8년 전 시작된 엄마의 역할을 '행복' 보다는 '매우 힘듦'으로 인식하기도 하는 것 같긴 하다. 간혹 아이 없는 커플이 자유분방하게 사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니깐. 그렇다고 나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엄마가 되기로 결심해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고,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사랑을 준다는 건 엄마를 찾을 땐 대답해 주고, 맛있는 밥을 먹이려 노력하고, 때맞춰 씻기고, 밤에 재워주고,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아침에 굿모닝 이라며 깨워주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서 나의 손길이 덜 필요할 때를 꿈꾸기도 한다. 지난 8년이 금방 지나갔듯,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내 손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순간도 금방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이 지금은 내가 엄마의 역할을 개인적인 시간 부족과 육체적으로 몸이 힘들어 '힘듦'으로 느끼더라도 곧 또 다르게 느낄 날도 있을 거라 한다. 


남편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난 큰애를 낳고 일 년 육아휴직이 보장된 이 나라에서 (캐나다), 6개월 만에 일터로 복귀했다. 둘째를 낳았을 땐 12개월에서 18개월로 법적 육아휴직 보장 기간이 연장 됐음에도 10개월 만에 다시 일터로 복귀하기도 했다. 그리곤 말했다. 애 보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나아.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눈에 밟혀 일터로 복귀하는 게 매우 힘들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진심으로 아이를 믿을만한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하는 게 집에서 모유 수유하며 애 둘과 씨름할 때보다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엄마'들은 '엄마'역할을 하면서 힘들다고 내색을 잘 안 하는 게/못하는게 문화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정도 힘든건 당연한 걸 가지고 죽는소리 한다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엄마'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말이다. (내 지난 글에 밤에 자다가 4번이나 애들이 '엄마~'를 찾아서 이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다 잠이 다 깨버린 이야기가 있다.) 난 내 심리상태에 솔직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 육아는 나만 하느라 힘들다고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년에 동시 퇴사를 한 남편과 공동 육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 둘을 키워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아빠'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공동육아를 해도 아이들은 엄마를 더 찾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 있었다. '네가 남자아이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친가 쪽 식구들은 둘째로 태어난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은 건가 싶었다. 어떨 땐 실제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남자들이 더 자유로워 보였고, 사회적으로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아이도 안 낳아도 되고 등등등 아니면 아이를 낳더라도 몸에 전혀 변화가 없어 애 아빠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어린 나이에도 불공평해 보였다. 한국은 남자에게 군대라는 크나큰 책임감이 있지만, 넌 성격이 남자 같으니 군대 가면 잘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에겐, 여러므로 남자가 여자보다 콕 찝어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더 유리하다고 느끼며 컸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개인적인 집안 분위기가 합쳐져 나의 어린 시절은 잠시나마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였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심보였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몇 번을 새로 태어나놓고 이런 소릴 하나 할 수도 있겠으나.. 이번 생을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내는 게 지금의 내 목표이지 다음 생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없다. 어렸을 땐 있었다. 그럴수 있다면, 돈 많고,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하하 이상하게 돈 많고, 엄청 이쁘고, 능력 좋은 여자보다 같은 조건이면 남자(성별이)가 뭔가 더 플러스 요인인 것 같았다. 지금 아니고, 어렸을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얘기다. 


심지어 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 대답도 남편은 지금 사는 인생이 별로라고 들린다 하기도 했다. 글쎄. 그건 아니다. 지금 사는 인생에 매우 만족한다. 매우 만족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 당장 죽는다 생각하면 남은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남편이 알아서 잘 키워 주리라 믿는다. 


엄마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까지 오게 됐다. 결론을 말하자면, 간간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내가 엄마 역할을 싫어한다고 인정하고 싶진 않다. 가끔 아니 어쩌면 매우 자주 힘들다는 것 뿐이지, 싫다는건 아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잘 키워내면서 내 개인적인 행복도 잘 챙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와 보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엄마인지 아닌지 등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고, 내가 행복해지는데 성별이나 엄마 역할 등이 장애물이 되게 둘 필요가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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