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22년 차, 가끔 배추김치 무김치 말고 총각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등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런 김치도 구하려면 구할 수 있지만, 그 작은 양의 비해 비싼 가격 탓에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에 토론토에 열흘간 방문했었는데, 그때 아는 지인으로부터 한국에서 건너온 열무 씨앗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6월 어느 날 열무 씨앗을 텃밭에 심었다. 씨앗 포장지에 쓰여있기론 한 달 정도 키우고 수확하면 된다고 했고, 너무 많이 크면 질겨져 맛이 없으니 적당히 키우라고 했다. 흠.. 아무튼 초보에겐 이 '적당히'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첫 시도는 망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편이다.
그렇게 씨앗을 심었고 열심히 물을 주었더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열무 새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슈퍼에서 단으로 묶어 팔던 열무 사이즈를 떠올리며 '저 정도 보단 좀 더 컸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물을 열심히 주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아무래도 지금쯤이면 한 달이 다 됐거나 지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심을 하고 모든 열무를 잡아 뽑았다.
쑤-욱! 하고 뽑히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열무김치 만드는 법은 인터넷으로 미리 배워 뒀으니 이제 실전만 남겨 두었다. 얼마 전 우리 집에서 김치 만들 때 어떤 엄마가 시어머님 표라면서 가져온 열무김치를 엄청 맛있게 먹었었다. 그 맛이 내가 만들 열무김치에서도 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열무를 다듬었다.
내가 씨앗부터 키웠으니 열무의 무 부분도 거의 다 김치 하는데 썼는데 나중에 보니 잘라낼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조금 쓴 맛이 나는 것도 같다. 열무를 잡아 뽑은 날 저녁, 굵음 소금에 열무를 한 시간 정도 절인 후,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고 준비해둔 양념에 버무려 열무김치를 완성했다. 빨간 고추가 없어서 넣지 못했고, 지난번 김치 만들 때 새우젓을 다 써버려서 새우젓도 넣지 못했지만, 멸치액젓과 굵은소금, 양파, 찹쌀풀, 다진 마늘로 양념을 만들어 냈다.
다 만들고 이틀 상온에서 익혀놓고 보니, 아무래도 '적당히'키우고 수확했어야 했는데 조금 더 키워서 약간 질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양념이 맛있게 된 것 같아 기분은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싼 열무김치를 넉넉히 먹을 수 있고, 이웃에게도 조금 나눠줄 수 있어서 좋다.
아직 나에겐 많은 양의 열무 씨앗이 남았는데, 앞으로 한 달간 또 키워서 열무김치를 담가 먹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없을 것 같다. 주변에 키워서 해 먹고 싶다 하는 분들에게 나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