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20년간 살다 5시간 비행기 타고 캐나다 서쪽 밴쿠버 근처 소도시로 이사온지 어느덧 2년 차이다.
이사 와서 동네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원래도 좋은 친화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안녕하세요!'라면서 먼저 말을 걸었고, 아이들 나이가 비슷한 경우에는 빠짐없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지난 2년간 여러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토론토 살 때부터 김치를 담가먹곤 했는데 이곳으로 이사올 때 딤채 냉장고를 팔고 왔었다. 여기와서는 왠지 김치를 덜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하루 종일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열심히 해 먹으며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김치를 먹는 바람에 2달에 한번 꼴로 김치를 해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 냉장고를 가져오는 건데.. 아쉽다)
주변에 새로 사귄 아이와 엄마들을 초대해서 집밥을 대접할 때면 내가 만든 김치라며 내놓곤 했는데 다들 어떻게 김치를 만드냐며 놀라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회 되면 우리 집에서 언제 한번 같이 만들어 보자고 지나가는 인사말을 건네었는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장은 내가 보기로 하고 이것저것 샀다. 큰 배추가 9-10포기쯤 들어 있었던 것 같은 배추 한 박스와 파 몇 단 굵은소금 한 봉지, 생강 등을 샀고 나머지 필요한 재료는 우리 집에 있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요즘 배추와 무값이 금값인데 3가정이 재료비를 나누니 부담도 줄고 좋았다.
혼자 만들 땐 대충대충 하던걸 누군가와 같이 한다 생각하니 평상시 보다 절인 배추도 한번 더 씻었다. 너무 뽀득뽀득 씻었는지 나중에 김치가 싱겁게 느껴져 김치 국물을 덜어 굵은소금 한 스푼 녹여 다시 붓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절인 배추를 씻어 두고 다른 재료를 다듬어 두었을때쯤 다른 두 가정이 우리 집으로 왔다. 김치는 처음 담가 본다는 아들 둘 엄마는 핸드폰에 메모장을 켜고 레시피를 열심히 물어봤다. 미안하게도.. 내가 만들어 먹던 김치는 예전 엄마들이 '적당히, 알아서, 간 봐가면서, 한 움큼?' 등의 손맛 레시피라 알려주기가 애매했다. 그래도 비율적으로 어떤 재료들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적어가며 같이 김치 속을 만들었다. 나는 무생채 용 채칼이 없고 손으로 썰자니 힘들어서 믹서기에 무를 다 갈아서 양념을 만든다. 엄마들은 그럼 본인들은 이렇게 큰 믹서기부터 사야 하는 거냐고 했다 ㅎㅎ
배추에 김치 양념을 처음 발라본다는 그녀들은 어떻게 양념을 발라야 하는지부터 물어왔다. 난 배추를 왼손으로 잡고 가장 큰 겉잎부터 한 장씩 바닥에 놓고 안쪽 위주로 양념을 바르고 잎사귀는 쓱 지나오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마지막엔 배춧잎 쪽을 뿌리 쪽으로 최대한 접고, 마지막 배춧잎 한 장으로 배추를 잘 감싸서 김치통에 배추가 위로 보이게끔 담으면 된다고 했다. 어떤 엄마는 아무렇게나 김치를 통에 담았다가 (엎어 놓기도 하고, 길게 꽂아 놓기도 하고) 고민 끝에 결국 다 꺼내어 가지런히 다시 담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결혼해 살기 전에 한국에 친정엄마가 김치 할 땐 도와줄 생각을 못했다면서 후회 섞인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다. 한국 살 땐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바쁜데 김치를 같이 만들 생각을 했다면 그게 또 이상한 거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게 우린 필요에 의해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매번 할 때마다 감으로 하는 거라 맛있게 돼야 할 텐데.. 라며 긴장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내가 리드해서 하는 거라 더 신경 쓰였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나니 지난번에 보다 덜 맛있게 된 것 같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남편과 같이 만들었던 다른 가족들이 아이들이 먹기 딱 좋은 덜 맵고 덜 짠 건강한 김치 맛이라며 좋다고 해줬다. 착한 분들이다. 하하하
옆에서 남편이 수육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수육삶기 까지 더해져 오랜만에 친척들이 다 모인 명절같은 기분으로 저녁까지 같이 해 먹고 헤어졌다.
이렇게 한번 해 먹고 이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김치를 담가 먹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분은 하면 할 수 있겠는데 남편이 당연스레 집에서 하는 건 줄 알고 앞으로도 기대를 하게 될까 봐 겁나서 못하겠다 했고, 다른 한분은 김치 만들려면 필요한 여러 가지 장비들 (김치 버무릴 큰 통, 배추 절이는 통, 배추 물 빼는 소쿠리, 믹서기 등등)이 없어서 집에서 도전해 보기 쉽지 않다 했다.
경험상 몇 번 만들어 먹다 보면 사 먹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맛도 비교돼서 계속 만들어 먹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잘 만들어 먹어놓곤, 한국 가면 싸고 맛도 더 좋다면서 사 먹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또 든다.
이번 김치 사진은 못찍어서 지난번 사진을 올려본다. 수육도 지난번 사진이지만 딱 요렇게 해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