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Jul 08. 2022

김치 담글 건데 같이 할래요?

토론토에서 20년간 살다 5시간 비행기 타고 캐나다 서쪽 밴쿠버 근처 소도시로 이사온지 어느덧 2년 차이다.

이사 와서 동네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원래도 좋은 친화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안녕하세요!'라면서 먼저 말을 걸었고, 아이들 나이가 비슷한 경우에는 빠짐없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지난 2년간 여러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토론토 살 때부터 김치를 담가먹곤 했는데 이곳으로 이사올 때 딤채 냉장고를 팔고 왔었다. 여기와서는 왠지 김치를 덜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하루 종일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열심히 해 먹으며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김치를 먹는 바람에 2달에 한번 꼴로 김치를 해내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 냉장고를 가져오는 건데.. 아쉽다)


주변에 새로 사귄 아이와 엄마들을 초대해서 집밥을 대접할 때면 내가 만든 김치라며 내놓곤 했는데 다들 어떻게 김치를 만드냐며 놀라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회 되면 우리 집에서 언제 한번 같이 만들어 보자고 지나가는 인사말을 건네었는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장은 내가 보기로 하고 이것저것 샀다. 큰 배추가 9-10포기쯤 들어 있었던 것 같은 배추 한 박스와 파 몇 단 굵은소금 한 봉지, 생강 등을 샀고 나머지 필요한 재료는 우리 집에 있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요즘 배추와 무값이 금값인데 3가정이 재료비를 나누니 부담도 줄고 좋았다.


혼자 만들 땐 대충대충 하던걸 누군가와 같이 한다 생각하니 평상시 보다 절인 배추도 한번 더 씻었다. 너무 뽀득뽀득 씻었는지 나중에 김치가 싱겁게 느껴져 김치 국물을 덜어 굵은소금 한 스푼 녹여 다시 붓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절인 배추를 씻어 두고 다른 재료를 다듬어 두었을때쯤 다른 두 가정이 우리 집으로 왔다. 김치는 처음 담가 본다는 아들 둘 엄마는 핸드폰에 메모장을 켜고 레시피를 열심히 물어봤다. 미안하게도.. 내가 만들어 먹던 김치는 예전 엄마들이 '적당히, 알아서, 간 봐가면서, 한 움큼?' 등의 손맛 레시피라 알려주기가 애매했다. 그래도 비율적으로 어떤 재료들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적어가며 같이 김치 속을 만들었다. 나는 무생채 용 채칼이 없고 손으로 썰자니 힘들어서 믹서기에 무를 다 갈아서 양념을 만든다. 엄마들은 그럼 본인들은 이렇게 큰 믹서기부터 사야 하는 거냐고 했다 ㅎㅎ


배추에 김치 양념을 처음 발라본다는 그녀들은 어떻게 양념을 발라야 하는지부터 물어왔다. 난 배추를 왼손으로 잡고 가장 큰 겉잎부터 한 장씩 바닥에 놓고 안쪽 위주로 양념을 바르고 잎사귀는 쓱 지나오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마지막엔 배춧잎 쪽을 뿌리 쪽으로 최대한 접고, 마지막 배춧잎 한 장으로 배추를 잘 감싸서 김치통에 배추가 위로 보이게끔 담으면 된다고 했다. 어떤 엄마는 아무렇게나 김치를 통에 담았다가 (엎어 놓기도 하고, 길게 꽂아 놓기도 하고) 고민 끝에 결국 다 꺼내어 가지런히 다시 담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결혼해 살기 전에 한국에 친정엄마가 김치 할 땐 도와줄 생각을 못했다면서 후회 섞인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다. 한국 살 땐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바쁜데 김치를 같이 만들 생각을 했다면 그게 또 이상한 거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게 우린 필요에 의해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매번 할 때마다 감으로 하는 거라 맛있게 돼야 할 텐데.. 라며 긴장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내가 리드해서 하는 거라 더 신경 쓰였다. 그런데 만들어 놓고 나니 지난번에 보다 덜 맛있게 된 것 같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남편과 같이 만들었던 다른 가족들이 아이들이 먹기 딱 좋은 덜 맵고 덜 짠 건강한 김치 맛이라며 좋다고 해줬다. 착한 분들이다. 하하하


옆에서 남편이 수육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수육삶기 까지 더해져 오랜만에 친척들이 다 모인 명절같은 기분으로 저녁까지 같이 해 먹고 헤어졌다.


이렇게 한번 해 먹고 이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김치를 담가 먹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분은 하면 할 수 있겠는데 남편이 당연스레 집에서 하는 건 줄 알고 앞으로도 기대를 하게 될까 봐 겁나서 못하겠다 했고, 다른 한분은 김치 만들려면 필요한 여러 가지 장비들 (김치 버무릴 큰 통, 배추 절이는 통, 배추 물 빼는 소쿠리, 믹서기 등등)이 없어서 집에서 도전해 보기 쉽지 않다 했다.


경험상 몇 번 만들어 먹다 보면 사 먹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맛도 비교돼서 계속 만들어 먹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잘 만들어 먹어놓곤, 한국 가면 싸고 맛도 더 좋다면서 사 먹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또 든다.



이번 김치 사진은 못찍어서 지난번 사진을 올려본다. 수육도 지난번 사진이지만 딱 요렇게 해 먹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존 킨들에 ebook 요리책 내고 받을 첫 인세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