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Nov 04. 2022

수영강습 첫날, 멘붕이 찾아왔고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11월 강습 신청은 10월 25일부터 시작됐다. 2-3일 신청서를 받은 후, 남는 자리 수만큼 렌덤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는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그리고 큰애를 신청했다. 같은 날로 월, 수, 금. 오전 7시는 남편, 9시는 나, 3시는 큰아이 수업이다. 운 좋게 모두 당첨이 되었고 그렇게 온 가족이 수영으로 바빠져 버렸다. 마치 온 가족이 수영 배우러 한국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떠나오기 전 초보 수영강습을 나갔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이었고 어느 주는 까먹고 못 가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느 날은 구명조끼 설명을 한 10분 하기도 하고.. 5명 학생을 놓고 배우는데도 왠지 여기서 수영을 배우려면 한참이 걸리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곧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가면 수영 선생님이 아주 쪽집게처럼 나 같은 왕 초보도 수영할 수 있게 잘 가르쳐 줄 거란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해 거의 두 달 가까이를 경기도 광주에서 지내다 세종시로 왔다.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은 세종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아 여긴 어딜 가도 사람이 없고 붐비지 않아서 좋아'라고 말하던 나는 어디가고 수영 첫날부터 멘붕에 빠져 버렸다.


*Watch and learn 보고 배우시오.*

우선 데스크에서 멤버십 카드를 건네고 라커 키를 받았다. 신발장 번호와 옷 장 번호가 같으니 그 번호를 찾아 쓰면 된다. 거기 까진 쉬웠다. 안에 들어가 보니 홀딱 벗은 사람과 수영복을 입은 사람 강습 끝나고 나갈 채비를 하는 사람으로 탈의실 안은 굉장히 붐비었다.


이때부터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옷장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우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샤워장으로 가서 몸에 물을 적시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많아서 샤워장이 엄청 바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어떤 스텝을 빼먹은 건지 잘 몰랐다. 얼떨결에 초보 레인에 들어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보니 9시 딱 맞춰 몸풀기 노래가 나오면서 다 같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몸풀기를 하겠습니다'라는 안내말은 없었다. 어느새 신나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고 다 같이 앞에 강사님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 하길래 나도 같이 몸을 움직였다. 3-4분 정도 노래 한곡이 끝날 동안 스트레칭을 하는데, 선생님 동작이 살짝 영혼 없는 움직임이라 느껴졌다. 내 느낌에 선생님이 해야 되니 하긴 하나 마지못해 하는 듯,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고 웃지도 않았고 동작이 신나 보이지도 않았다. 뭐 에어로빅 강사가 아니니 분위기를 띄우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돼서 그러나.


초보반에 정원은 20명이었고 두 레인을 썼다. 수영이 처음인 사람 손들어 보라 했는데 나 포함 5명이 왕 초보로 구분되었다. '발목을 피고 다리를 쭉 피고 발차기하세요'부터 음~파~ 까지, 그리고 음~파~를 하면서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가기 까지, 그렇게 첫 시간이 지났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벌써 6만 원 한치 한 달 강습료를 다 한 것 같다고 했다. 수업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스트레칭에 영혼이 없으면 어떠하리. 역시나 한국 선생님은 달랐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수영을 금세 배울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수영 가르치기에 달인으로 보였달까.


문제는 수업 후였다. 중급, 고급 반보다 1-2분 늦게 끝났는데 샤워실로 들어갔을 땐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씻는데 진심으로 보였다. 캐나다 수영장 탈의실에선 잘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거기선 대충 물로 씻고 수건으로 말린 후 집에 가서 씻는 거였다. 물론 거품으로 씻고 샴푸, 린스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없다. 여기선 흡사 목욕탕처럼 열심히 구석구석 씻었고 샴푸, 린스까지 하려니 안 그래도 부족한 샤워장은 도떼기시장 같았고 어떤 칸은 아는 사람 두 명이 같이 씻기도 했다. 첫날이라 난 아는 사람도 없고 어정쩡하게 차례를 기다리는데 자리가 나자마자 옆에 아줌마가 자기 친구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걸어온 친구분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봐도 내가 줄 서서 기다리던 상황 인걸 알 수 있었다. 찰나의 어색함을 느끼는 세에 그 광경을 보던 다른 아줌마가 한마디 해 줬다.

'거기서 기다리면 안 돼요~ 여기 들어와서 뒤에 서있어야지.'

'아.. 그런 거군요.'

'저기 강사님 나가시겠네. 거기로 가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샤워기 한 칸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엔 샤워기마다 비누 바가 있었고 난 그거로 대충 샤워를 했다. 머리는 건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와 다시 맘 편히 샤워를 했다. 아.. 이걸 매번 수영장 갈 때마다 해야 하다니. 난감하군.


같은 날 오후 3시. 딸아이를 데리고 갔다. 첫날이니 나도 함께 갔는데 이번엔 아이들이 바글바글 했다. 아이들이 어리니 애들 수영복을 탈수해주시는 아주머니도 한분 계셨다. 그분이 우리 아이에게 수영장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 설명을 듣고 있자니 아침에 내가 빼먹은 스텝이 뭐였는지 알게 됐다. 바로 거품 샤워는 끝나고만 하는 게 아니고 물에 들어가기 전에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서 샤워장이 더 붐볐던 거구나. 나는 대충 물로만 씻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우리 아이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공중목욕탕 경험이 없는 아이는 다름 사람들 앞에서 옷을 다 벗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여기선 이렇게 하는 거라며 괜찮다고 설명해줬다. 아무도 너 몸에 신경 쓰지 않으니 옷 다 벗고 씻은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또 끝나면 같을걸 다시 하라고 알려주었다.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샤워장 밖 바구니에 꺼내놓으면 아주머니가 탈수해 두시니 나오면서 집어오는 것도 까먹지 말라 알려주었다. 딸아이를 기다리며 샤워장 밖에 서있자니 8-9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야무지게도 씻고 혼자 머리 말리고 옷도 갈아입고 매우 잘한다. 우리 아이도 곧 적응해서 아무렇지 않게 다닐 날이 오겠지?


그날 저녁 다시는 수영장에 안 가겠다는 아이를 비싼 수업료를 다 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오늘도 안 가겠다는 아이를 수영 배워서 네가 동생 수영도 가르쳐 주면 좋지 않겠냐며 꼬셨다. 창피함은 잠깐이다. 그리고 처음이라 창피하지 그것도 익숙해지면 무뎌진다. 여러므로 아이가 눈치도 봐야 하고 새로운 문화도 경험해야 하고.. 성숙해지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듯싶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치원은 왜 꼭 가야 하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