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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Feb 13. 2023

토토로를 보고 아이들과 시골에 가서 사는 상상을 했다.

2018년 어느 날이었다. 캐릭터로만 알던 토토로 만화 영화가 넷플릭스에 올라왔다는 얘길 하며 온 가족이 티브이 앞에 둘러앉았다.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첫 장면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딸아이 둘과 시골길을 굽이굽이 가는데 아이들이 꼭 그 당시 우리 아이들 같아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허름한 시골집은 낡았지만 집은 커 보였고 무엇보다 땅이 넓어 바로 옆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토론토에 있는 타운하우스 였는데 총 4층으로 된 매우 길쭉한 집이었고, 양 옆으로 이웃과 벽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추운 캐나다 겨울을 나기에는 따뜻했지만 계단을 너무 쿵쾅거리고 다닐 경우 그 소리가 옆집까지 전달되기도 했다. 땅 값이 비싼 도시라, 앞집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면 앞집 거실이 훤히 보이는 거리였다.


토토로에 나오는 두 자매를 보고 있자니 우리 아이들도 시골에서 저렇게 뛰어놀게 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올라왔다. 물론 나는 요양이 필요 없는 엄마이지만, 나도 숲 속에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 패밀리 무비나잇인데 아직도 종종 토토로 영화를 다 같이 보곤 한다. 그리고 매번 나도 저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푸르른 여름, 엄청 큰 나무들은 여름 바람에 흔들리고,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도, 자전거 타고 시골길을 지나 학교에 간다. 내가 사는 집 바로 옆 가까이엔 나무 말곤 없다. 이웃집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지 않다. 밭에서 직접 키운 건강한 먹거리로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여 요리해 먹는다.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또 더운 데로 계절을 몸으로 느끼면서 해를 보낸다. 학원이 없는 동네라 학교 끝나면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는 앞마당에 나가 놀라고 하며 마당에 걸터앉아 따듯한 티를 마시며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본다..(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본다..라는 상상은 현실이 되기 어렵겠지만, 상상이니깐 ㅎㅎ 지켜만 보고 싶은 욕망을 넣는다.) 이렇게 상상했는데 우리가 토론토에서 밴쿠버 쪽으로 이사 갈 때 이 상상을 실현시키기 못했다.


2020년 가을, 살던 터전을 바꾸는 좋은 기회였는데 토토로 배경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아무리 그래도 깊은 산골은 무섭다. 막연히 무섭다. 바로 옆에 이웃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또 없다고 생각하면 괜히 불안하기도 하다.

2. 자연만, 자연밖에 없는 곳이 과연 좋을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키즈카페도 한 번씩 가줘야 할 텐데.. 아이들 수영도 가르치고 싶은데.. 발레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등등

아이들을 키우는데 돈을 지불하고 얻는 이런저런 경험/수업들 없이 자연만으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3. 아무리 시골이라도 이웃이 멀찍이 떨어진 넓은 땅을 찾는다면, 비싸다. 돈이 많이, 그것도 매우 많이 들어가는 결정이다. 회사를 퇴사하고 싶었던 우리가 모은 돈을 모두 땅과 집에 털어 넣기에는 우리의 은퇴 전략과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결국 우린 4층짜리 타운하우스에서 3층 짜리 타운하우스로 옮겼고, 집값은 토론토 집값에 반밖에 안 한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역시 앞집, 옆집, 뒷집까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서로의 존재를 노력하지 않아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리에 살게 됐다.


그래도 인구 10만 도시였던 칠리왁 (Chilliwack, BC)은 차 타고 10분만 나가면 토토로 못지않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긴 했다. 나무가 많고, 농사짓는 땅이 넓게 펼쳐져 있고, 개울도 있고, 강도 있고, 호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세종시 아파트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토론토에서 칠리왁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또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 칠리왁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토토로 영화 속의 집 같은 곳에서 살고 있진 않지만, 온 가족이 몸으로 한국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날씨가 조금 더 풀리면 차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 다니는 상상을 한다. 숙소는 비싸지 않은 곳으로, 짐은 최대한 가볍게, 음식도 만들어 먹어가면서 다니는 여행을 꿈꾼다. 상상을 하다 보면 상상 속의 모습이 현실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걸 이젠 안다.


그러니, 잠시 다 같이 각자의 상상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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