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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Feb 15. 2023

저.. 시급은 어떻게 되나요?

약 2년 전 남편과 함께 잘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낼 당시, “우리의 은퇴계획은 완벽해! 그러니 앞으로 돈 걱정 없이 남은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괜히 사표 내고 나왔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가지고 있는 저축이 생각보다 금방 동나면 어떡해?

회사 안 다니는 인생이 지루하면 어쩌지?

부부가 너무 오래 붙어있어도 별로 라던데..

등등 퇴사를 하지 말고 그냥 살던 데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떠올랐다.


그럼에도 우리가 퇴사를 한 이유는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는 완벽한 타이밍이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에라도 우리가 퇴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항상 존재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젊다는 것이 정규직 직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큰 자산이기도 했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대략적으로 준비가 됐다 싶을 때 저질러 버렸다. 그렇게 동반 퇴사하고 1년 반쯤 지났을 때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대 이동을 했다.

캐나다 살던 집을 250만 원에 월세 놓고, 우린 70만 원짜리 아파트로 옮겨왔다. 계산상 사는 집만 바꿨는데도 생활비 충당이 웬만큼 될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6개월 가까이 살아보니, 계산상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주거지를 바꿈으로써 발생한 소득은 금리인상과 함께 자라난 이자를 메꾸는데 쓰이게 됐다. 그러고 보면 이사라도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기도 하다.


그럼 내가 기대려고 했던 생활비는 금융투자에서 찾아 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요즘 주식 시장도 많이 내려온 상황이라 지금 찾으면 제 살 깎아먹는 기분이 들어서 영 내키지 않는다. 시간은 돈이고 장기 투자를 해야 제대로 된 복리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지금 백만 원이 필요하다고 꺼내 쓰면 그 돈의 가치는 백만 원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액수를 겨우 백만 원으로 바꾸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그냥 두기로 한다.


그럼 남은 수는 하나밖에 없다. 우리가 나가서 돈을 벌면 된다. 그렇게 적당한 알바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난번에 우리 동네 이쁜 한옥카페에 가서 알바자리를 물어본 적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주 5일을 일하고 월급은 최저 시급으로 주는 곳이었다. 시급은 그렇다 쳐도 '난 주중 3일 정도만 일하고 싶고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하고 싶은데요.. 그렇게는 안 뽑으시나요?' 라고 말했는데 될 리가 없다.

동네에 새로 생긴 백다방에서 오전시간에 일할 주부를 구하기도 했다. 당근 알바로 봤는데 경쟁이 치열했다. 결국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 매주 화요일에 하는 동네 아파트 단지 아이들에게 영어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물어물어 소개소개로 영어 선생님 알바 자리가 들어왔다. 알바를 구하면서 보니 구인 광고에 시급이 얼마인지 정확히 써 놓지 않는 곳이 참 많았다. 소개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관련된 일에 대해 대화를 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우리 한번 만나죠? 까지 대화가 흘러갔는데 도대체 얼마를 주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물어봤다.


“저.. 시급은 얼마나 주시나요?”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듯 당황하는 모습이 수화기 너머로까지 느껴진다.

물론 나는 최저 시급을 주는 바리스타 자리도 탐냈던 사람이다. 하지만 영어 관련 일을 한다고 생각하자 적절한 시급은 얼마인지 알아보게 되었고 결국 시급 네고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거라는 걸 몇 번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니,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급이 있으신가요?라는 역 질문도 받았다. 그래서 난 "네 최소 00 정도 이상은 됐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높다며 고민해 보고 연락 주겠다 하곤 연락이 없는 곳도 있었다.


이번에 일하기로 한 곳은 하루에 한 시간씩 낮시간에 월, 화, 수, 목 4일 일하면 된다.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 4시간만 일하는 곳이다. 왔다 갔다 이동시간이 일하는 시간과 비슷하겠지만 하기로 했다. 여기도 한참 통화 후, 우리 만나서 얘기하죠, 까지 나왔는데도 시급을 알려주지 않아 내가 먼저 물어봤다. 대표님은 시원하게 원래 초보 선생님은 얼마인데, 나는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왔으니 경력자로 쳐 주겠다면서 금액을 제시했고 난 흔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오랜만에 차려입고 정식 대면 인터뷰도 하고 왔다. 일주일에 4시간 일하는 알바 이긴 하지만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최소한으로 일하고 최대한으로 자유를 누리겠어!라고 생각하면 좋을 일이지만 왠지 내 은퇴계획이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퇴사해 보고 정 안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었으면서, 왜 다시 고용주를 만나러 가는데 기분이 별로였던 걸까.


며칠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퇴사하고 하고 싶었던 창작활동이나 좀 더 자기 주도적인 일은 많이 해내지 못한 것 같은데 다시 누군가가 주는 돈을 받고 내 시간을 내주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 같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면, 퇴사하고 새로 생긴 시간을 운동과 독서 글쓰기 등으로 매우 바람직하게 그리고 뿌듯하게 쓰고 있으면서 어떤 돈벌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렇게 죄책감 가질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우선 지금 시점에 필요한 선택을 하고 또 기꺼이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한 시간, 4일만 하고도 생활이 굴러간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니 말이다.


오늘 아침 수영시간에 선생님이 평영을 하는 나를 세웠다.

“회원님, 팔 동작을 조금 더 스피드 하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성격이 좀 느긋하신 편인가요?”

하하하 난 “네 맞아요. 성격이 좀 느긋한 편이죠.”라고 답했다.


느긋하고 긍정적이고 이것이 내 장점이다.

영어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잘할 수 있다고 주문을 또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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