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자기 의심이 시작된다면..
내가 정말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걱정의 나날을 보낼 때가 있다. 자기 의심을 계속하다가 좋은 기회를 그냥 포기해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아니야 해보자!' 하고 도전해 보기도 한다.
오늘은 그동안 경험했던 ‘자기 의심’의 시간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8년 전, 대학교 1학년 때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려면 1학년을 무사히 마쳐야 하는데 첫 시험부터 낙제를 하고 말았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은 우선 그 과목을 포기하고 다음 해에 다시 들으라고 조언했다. 난 포기할 수 없었다. 캐나다 대학교 등록금이 비쌌고, 또래보다 2년이나 늦게 대학에 왔는데 1년을 더 기다리라는 옵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과연 내가 1학년을 잘 마치고, 심리학 전공자가 되어 2학년에 무사히 진학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나는 1학년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2학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물 흐르듯이 학생 때 사무직 아르바이트하던 보험회사로 정규직 취업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은행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내가 자기 의심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 매우 달라져 있을 것 같다. 보험회사에선 보험과 투자상담 두 가지 일을 다 했다. 은행으로 옮기면서는 투자상담만 전문으로 하는 직책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렇게 은행 투자 상담 전문직을 알아보는데.. 캐나다 5개의 은행에 모두 지원하여 첫 인터뷰를 갔던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인터뷰엔 직속 상사가 될 매우 포스 있는 여자분이 나왔다. 그러면서 말하길, 첫 해는 트레이닝 기간이 있기 때문에 투자유치 액수를 높게 잡진 않는다면서 $6M (밀리언)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한국돈으로 하자면 거의 60억쯤 될 것 같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자격증 공부를 같이하여 1년 안에 필요한 자격증도 따는 조건으로. 속으로 엄청 놀랐는데 놀라지 않은 척, '뭐 그쯤이야 할 수 있다' 면서 허풍을 떨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솔직하게 '아.. 네 그렇군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가 어떻게... 전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이만 안녕히 계세요...'하고 나올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나를 인터뷰했던 보스가 사람 보는 눈은 있었는지, 자신 있다 말하는 내 입술과, 그와는 달리 자신 없어하는 내 표정을 용케 읽어낸 듯싶다. 2차 인터뷰는 없었다.
내가 자기 의심을 강제로라도 떨쳐낼 수 있게 도와준 사건은 그다음 다른 은행 인터뷰 때이다. 비슷한 직책으로 여러 군데 지원했던 터라, 인터뷰가 다시 잡혔다. 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있을 때였지만, 나의 이력은 은행 인사과에서 찾고 있는 이력이었다. 두 번째 은행과의 인터뷰 날이 다가왔고, 난 지난번 인터뷰 때 60억이라는 숫자에 놀라 이 직업을 내가 잘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반 포기상태로 지내왔다. 그래서 인터뷰 당일날 두 번째 은행과의 인터뷰는 거절한다는 이메일을 보내 버렸다.
그랬는데 그 인터뷰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 이메일을 아직 못 읽었다면서..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의 이력이면 이 일을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거라면서 내 직속상사가 될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보스가 될 사람과 대면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간 이상 이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이번엔 표정도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일들엔 어느 정도 연기가 필요하다는 걸 배운 시간들이었다. 잘할 수 없을 것도 같지만, 무조건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나를 믿고 뽑아달라는 연기. 뽑힌 후 초보 투자 어드바이저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경력자인 것만 같은 표정과 말투 등을 연기할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시간 안에 안정적인 어드바이저가 되긴 어렵다. 속 빈 강정 같은 연기는 물론 금방 들통나겠지만, 처음부터 '아.. 제가 지금 막 시작한 초보라서요…한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같은 무모한 솔직함은 필요 없다.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밖에서 봤을 땐 몰랐던 세상이었다. 은행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은행에 투자 상담받으러 오는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은 얼마나 전문가인지.. 그리고 그 부자 손님들을 소개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상 은행에 들어오고 나니 난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도 결국 해 내게 됐다. 60억이 아니고 100억 가까이 되는 투자 유치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잡 인터뷰할 땐 알 수 없었으니 마냥 두려워했던 예전에 나 자신도 이해가 되긴 하다.
이 은행에 이직한 스토리는 내가 좀 더 자신을 믿고 도전해도 된다는 자기 확신을 만들어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다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스스로를 좀 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해 준 소중한 데이터가 되었다. 이 데이터가 쌓여서 또 한 번 무모해 보이지만,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자연환경 하나 믿고 비행기 타고 5시간 걸리는 서쪽 시골로 이사 갈 결심도 할 수 있었고, 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으로 날아올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기 의심에 빠졌을 때 은행으로의 이직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하게 된 일들이다.
최근 들어 경험한 자기 의심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린이들 영어 가르치는 일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고, 내가 잘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또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냥 못하겠다고 할까..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눈 질끈 감고, 도전 정신으로 시작했고 두 달 지나고 세 달째 되니 별거 아닌 일이 아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도 연기는 조금 필요했다. ‘저 완전 전문가니 믿고 맡기셔도 됩니다’라는 포스가 필요했다. 이런건 말로하는게 아니라 행동과 분위기로 알려야한다. 다행히 10년 차 선생님으로 보이진 않겠지만, 이제 막 시작한 6개월 차 선생님으로 보는것 같지도 않다.
다른 하나는 수영이다. 초보반인데 자꾸 중급으로 올라가라 하셔서 수영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까지 하기도 했다. 중급 가면 잘 못할 것 같은데, 계속 가야 한다고 하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니 접영 빼곤 많이 늘었다. 접영은 알려주지 않는 수영수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고 싶긴 하다.
지금까진 자기 의심이 있었지만 극복하고 넘어왔더니 또 한 단계 성장되어 있더라..라는 훈훈한 이야기만 쓴 것 같기도 한데, 아직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역이 있기도 하다.
바로 글쓰기이다. 브런치를 몇 년째하고 있는데, 시간을 정해두고 꾸준히 하는 게 아니라 그런지 성장이 되고 있는 건지 내가 글쓰기로 과연 돈을 벌 날이 올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
의심만 하다 끝나지 않길 바라본다. 아직 글쓰기 영역에서 연기를 시도해 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라는 최면이 더 필요한 듯하다.
<요약>
1. 자기의심이 들더라도 욕심나면 도전해 보자.
2. 도전했다면 초보자가 아닌척 연기를 하면서 실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해 본다.
3. 중간에 경로를 바꾸게 되도라도 작은 성공들이 쌓여, 앞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때 자기의심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