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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8. 2023

나에게 연필은 성실함의 상징이다.

나에게 연필은 성실함에 아이콘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성실함은 없다는걸 깨닫게 해준 사건이 여럿 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시험공부를 시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깜지 한바닥을 완성해 오라고 하셨다. 처음엔 제대로 깜지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작은 글씨체로 열심히 적어 나갔다. 그러다 이런 속도론 내일 안에 다 숙제를 해 낼 수 없겠구나 싶어졌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글씨를 대왕만하게 종이 한바닥에 가득 차게끔 크게 적고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글씨를 적고 하면서 종이를 까맣게 만들어 버리자 라는 생각이었다.

난 용감하게도 그걸 실행에 옮겼고 다음날 숙제 검사때 당당하게 그 말도 안되는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날 선생님께 호되게 얻어 터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그날의 깜지 숙제 사건은 나자신이 꼼꼼하고 성실한 학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에 이유를 붙여 준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연필과 성실함에 대한 나만의 연결고리를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때 나와는 달리 공부를 매우 잘했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놀러간 그 친구집에서 연필로 빼곡히 적힌 공책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나 열심히 공부해왔단 말이야?

친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매 시험 때 마다 모든 과목을 이렇게 연필로 적어서 공책을 채워가며 암기한다고 했다.

난 마치 새로운 비밀을 발견했다는 듯이, 친구의 공부 비법을 바로 따라하기로 했다. ‘그래 나도 이렇게 공부하면 친구처럼 반에서 일등도 할 수 있을꺼야’라고 생각하면서..마치 이걸 안해서 내 성적이 높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결심은 언제나 그렇듯 오래가지 못했다. 손가락이 아파왔고 집중력은 떨어졌으며 내가 그 친구처럼 필기노트를 이쁘게 완성 하는걸 원하는 건지, 암기를 목표로 적고 있는건지 도대체 잘 모르겠는 심정이 들면서 결국 포기하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학창시절에 연필로 얻을 수 있는 성실함과 끈기를 장착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요즘들어 많이 생각하는것이 있다면 매일 글을 적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나에게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렸을때 혼자 연필을 붙잡고 시도하다 실패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운명적으로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모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이 모임에 참여하겠다는 결단을 내렸으며, 지금 이렇게 벌써 성실하게 키보드로 글쓰는 힘을 길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14주간 연필을 붙잡고 성실히 글씨를 적어내듯이 키보드를 붙잡고 꾸준히 글을 써 낼 것이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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