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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Feb 08. 2024

1년 계약직이 끝났다

드디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작년 3월 어느 날 유치원으로 첫 영어 수업을 갔다. 나는 우리 아이들 말고 누군가를 가르쳐 보는 건 처음이었다. 유치원 강당에 도착하니 5살 아이들이 27명이나 모여 있었다. 휴대용 마이크도 없이 씩씩하게 수업을 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아무래도 제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미 나의 목소리는 상당히 쉬어 있었다.


대표는 "딱 3월 한 달만 버텨 보세요, 선생님. 한 달만 잘 넘기면 괜찮으실 거예요."라며 나를 응원했다. 나는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를 벌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둘 땐 내가 2년 후에 한국에 살면서 한국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날이 오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3월 한 달만 버티면 괜찮을 거라는 대표의 말은 사실이었다. 난 무사히 1년을 잘 살아내었다. 일주일에 두 번, 30분짜리 수업을 연속으로 번 했다. 5살, 6살, 7살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5살 아이들이 특히 어려웠다. 코로나 시절 집에만 있었던 어린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종족인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내가 수업을 너무 재미없게 해서 그런 건가 좌절했다가, 또 어느 날은 아이들 반응이 유달리 폭발적이었다면서 뿌듯해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오늘의 하루를 얘기할 땐 언제나 마무리는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이런 일을 해 보겠어."였다.


30분간 나는 행사 진행자가 되어야 했다. 첫 강사 미팅 때 15년 차 영어 강사의 시연을 보고 거의 기절할 뻔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 사람은 스탠딩 코미디 쇼를 하는 어느 방송국 출신 개그우먼 았다. 속성으로 배운 그 강사의 아우라를 흉내 내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안 하던 영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보며 우리 아이들이 엄청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어설픈 나의 로봇 춤은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하지 못하고 일 년이 끝나 버렸다.


일 년쯤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보니 이젠 아이들 '영어 강사'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져 버린 영어 강사 정체성도 곧 지워질 텐데, 또다시 일 년 후엔 어떤 정체성을 입히며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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