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변화

이제 겨우 2주 차

by 안개꽃

이맘때 하는 유치원 봄방학 일주일을 3주간 하겠다는 결정을 들은지 거의 이주가 다 되어간다.

우리집엔 총 6식구가 살고있다. 나, 남편, 첫째 5살, 둘째 2살, 그리고 내 늦둥이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

쌍둥이 동생중 한명은 대학교 졸업반, 다른 한명은 3학년 이다. 둘다 학교도 못하고 알바도 못가도 심지어 데이트도 못하고 집에 같이 있다.

이렇게 길게 온가족이 쭈욱 함께하긴 처음이것 같기도 하다. 지난주만해도 월,수,금 아이들을 한국 이모님께 맡겼었다. 집에서 애들하고 일하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이미 3주간 아이들을 간간히 부탁했고, 선불도 드렸는데, 이번주부터 집에 데리고 있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토론토에 확정자 수가 심상치 않게 늘어나고 있고, 일이야 지지고 볶고 어떻게 해서든지 애들을 데리고 해보지 뭐. 애들 건강이 더 중요하지 일이 더 중요한가..하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다. 그런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남편은 정해진 팀 미팅이 나보다 더 많아서 우선 남편 스케줄에 맞춰 내가 애들을 보고, 다른 시간에 내가 틈틈히 일한다. 이렇게 라도 집에서 일할수 있어 참 감사하다 생각 하면서..

어젯밤 일이다. 주말에 의례 남친과 데이트를 하고 오는 막내 여동생이 평소와 다르게 날카로워 보였다. '누가 내 요가 메트 썼어? 닦아서 잘 말아놔' 라고 평상시는 하지 않았을거 같은 멘트를 날린다. '앞으로 동네 친구들 우리집에 오라고 하지 말고 서은이도 보내면 안되!' 이상하게 날이섰다.

그러던 중 집앞 마당에서 우리 애들이 나가 노는데, 옆집 앞집 앞마당을 나눠쓰는 이웃들 아이들이 나온다. 어쩌다 보니 애들이 5명이 되고 따라나온 부모들이 4이 되었다. 이제 우린 들어갈 찰나에 여동생이 문을 열고 한마디 한다. '엘렌! 6 feet apart I said!' 벌쭘해진 나는 들어오면서 이웃들에게 내 여동생이 지금 좀 민감해요^^;;라고 멋쩍게 말하고 들어왔다.

저녁에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지난 이틀동안 너 답지 않았고, 아까도 내가 좀 민망했다고. 그렇게 소리 질르지 않아도 됬을거 같은데..애들을 집안에서만 보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너가 아느냐 등. 옆에있던 남편이 얘기를 이어간다. 본인도 너가 평상시 같이 않다고 몇일째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다들 예민해 져 있고, 앞으로 이 생활을 얼마나 더 길게 할지 모르니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여동생이 눈물을 흘렸다. 헐. 동생이 우는거 몇년만에 본다.

'나는 알렉스도 못만나는데 쟤는 친구들하고 철없이 놀고~'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던거 같아. 미안해' 라고 했던거 같다.

이날 저녁 애들이 잠든 후, 남편은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너무 진지해서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를 걸리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과, 집에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이 일주일 이 조금 지나자 각자의 예민함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로 회의를 시작했다. 한 집에 살지만, 모든 멤버가 자기만에 스케줄로 생활하니 한집에 오랫동안 함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가 없는 주말에도 애들은 애들 스케줄, 아트 클라스, 짐네스틱, 반 친구들 생일 파티 등으로 바쁘고, 동생들은 알바와 데이트로 바쁘고, 남편은 요가와 운동으로 바쁘고, 나는 그 안에서 나름 바쁘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모두 접은채 한 집에 다같이 있으려니 예민함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다.

이쯤에서 남편은 회의를 열었다. 우선 이 생활이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더 길어질 예정이니, 마음에 준비를 더 해야 한다. 또한 그래도 우리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당장 얼마간은 재정적으로 버틸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한 팀으로 합을 잘 맞춰서 이 시기를 버터야 한다고 했다. 사뭇 진지하게 얘기해서 웃음을 참아야 했다.

분위기 전환으로 우린 일주일치 메뉴 회의로 주제를 넘겼다. 그것또한 완전 진지해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컴터를 하나씩 키고, 구글 엑셀 쉐어로 테이블을 만들어 아침, 점심, 저녁 메뉴와 장보기 리스트를 적었다. 너무 심한 사재기는 안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일주일 보단 앞으로는 이주씩의 음식을 장보려고 한다.

이제 겨우 2주 됬는데, 코로나 방콕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길 바래본다.


이번주 메뉴. 우린 진지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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