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퇴 전 마지막 이야기

앞으로 우리의 앞날이 오늘만 같다면..

by 안개꽃

2021.03.11 목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아이들은 밤 8시에서 8시 반에 차례로 잠들고, 우리는 9시 전에 누워 금방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아직 9시도 안됐는데 이건 좀 너무 하지 않아?' 라며 헛웃음을 지은 것도 잠시, 둘 다 금방 잠에 빠져들어 버렸다.

연말부터 지난 몇 달간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탓일까. 새벽에 화장실 간다고 깼던 큰애 때문에 한 30분 핸드폰 보면서 깨어있던 시간 빼고는 아침 7시까지 잤다. 아침에는 믿기지 않는 아이들의 행복한 수다가 옆방에 들려왔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떴다. 내가 아직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 성훈이는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고 함), 서은이는 학교 갈 옷을 다 입고 우리 방에 와서 양치를 혼자 했으며, 봄이는 내 옆으로 들어와 누웠다. 서은이가 양치를 다 했는데도 온 가족이 침대에 있자, 혼자 부엌으로 가겠다면서 내려갔다. 잠시 후 나머지 세명이 양치를 하고 내려가 보니, 서은이는 처음으로 스스로 식빵을 꺼내서 토스터에 굽고 접시에 빵을 담아 식탁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차려낸 아침식사를 매우 뿌듯해하면서! 정말이지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다.

다들 잘 자서 그런지 오랜만에 4명다 기분이 좋다. 모닝 수다를 빵에 잼 발라 먹으면서 열심히 떨고 난 왔다 갔다 하면서 도시락도 싸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했다. 요즘은 학교도 혼자 가지만, 기분이 좋아진 성훈이가 같이 가고 싶다고 따라나선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식사가 본인이 상상해 오던 그런 아침 식탁 풍경이었다면서 매우 기뻐했다. 상상해 오던 그림이란, 집중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특별할 것도 없는 메뉴지만, 갓 토스트 한 식빵에 각자 취향껏 잼 발라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과일도 먹는다. 무엇보다 여유롭게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그런 그림이다.

늦잠 자지 않았어야 가능하고, 기분이 좋아야 가능한 그런 그림이다.



2021.03.24 수

2주 전에 사퇴를 하겠다고 매니저에게 전달했다. 이틀 후, 금요일이 우리 둘 다 회사에서 마지막 날이다.

작년 11월에 이직한 후 계속 재택근무를 해 오던 터라 작별 인사를 나눌 동료가 없다. 오히려 짤렸던 전 직장에 동료 또는 친했던 고객님들께는 나의 새로운 근황을 전달하고 진심 어린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상상만 해 오던 일이었는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내 현실이 될 거라 생각하니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 '조기은퇴를 꿈꾸는 당신에게 2'를 희망찬 내용으로 채울 수 있도록 살아가게 됐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6화D-day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