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처음으로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서른 중반 나이인데, 아직도 처음이 참 많다.

by 안개꽃

2021.06.23 수

시작은 반항심, 또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남편은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확고하다. 그래서 요가도 일주일에 4번가고 (어떤 클래스는 한 시간 반짜리이다), 요가 강사 자격증도 있고, 명상도 하고, 요즘은 이주에 한번 어떤 선생님과 그룹으로 줌 미팅도 두 시간씩 한다. 그리고 이사 오고 이른 은퇴 계획을 하는 아주 타이트한 가계부 버젯 상황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 세트를 지하 방에 마련했다. 코로나 사태로 품절 대란이 일어나서 운동 관련 기구들 가격이 두배 이상 올랐고, 중국에서 수입 들어오는 배가 원활하지 않아 물건도 잘 없는 상황에 잘도 물건을 찾아내어 사 왔다.


이쯤 되니 정기적으로 한 번씩 화가 올라온다. 나도 일대일로 같은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내 취미 활동 시간을 가져야겠어!"

벌써 내 톤에서 원망의 목소리가 느껴진 듯하다. 남편이 지금 복수하는 거냐고 한다. 하지만 지원한다고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 보고 하라는 훈수도 뒀다. 벌써 내 마음은 훈수를 고마워할 자애로운 상태가 아녔으므로, 내 취미생활에 어떤 큰 의미를 부여해서 부담 주지 말고 내가 뭘 하든 참견하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생각해 보면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몸에 밴 것 같은 행동이 있다면, 나보다 연봉이 더 높은 남편이 하는 회사일을 알게 모르게 더 존중해 주지 않았나 싶다. 어떤 게 더 먼저 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써포트가 효과를 발휘한 건지 아니면 굳이 내가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도 남편은 잘 됬을건지), 우리의 연봉 격차는 그 후로도 한 번도 좁혀지지 않았다. 캐나다 대학에서 인사관리과를 전공할 당시, 한국에 비해 꽤 진보적인 이 나라에도 같은 학력과 경력 그리고 같은 직책의 남, 녀에게도 연봉의 격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물론 남편은 석사도 있고 크게 보면 같은 은행 인더스트리 이지만, 하는 일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우리의 연봉 격차가 남녀 차별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집안 밖에서의 연봉 격차가 집안 안에서의 가사활동 및 개인의 취미활동에 쓰는 시간을 정하는 데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 건 틀림없다.

문제는 남편이 '내가 돈 더 잘 버니깐 난 내가 원하는걸 너보다 더 요구할 자격이 있어'라고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는데 있다. 우리가 조기 은퇴를 감행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요즘 나는 이 고질적인 불평등을 천천히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누가 이 불평등을 만든 건지 범인은 확실 치 않다. 아닌가,, 범인은 나 자신인가?)

어쨌든, 이제 회사에서 들어오는 월급은 둘 다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편이 개인 시간도 나보다 훨씬 많이 쓰고,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나보다 훨씬 많이 쓴다. 그러면서 내가 뭐라도 하나 살라고 하면,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면서 눈치를 준다. 이건 확실히 입 밖으로 말하면서 주는 눈치이다.


어떤 식으로 내 개인 시간을 사수하는 게 가장 효과 적일지 고민해 보겠다고 하고 며칠이 흘렀다. 처음에는 공부를 할까 싶어 대학원을 가 볼까 했는데, 비싼 학비도 학비지만, 대학원 공부는 학사 때와는 달라서 지도 교수 지도하에 거의 취직하는 거나 다름없는 시스템이므로 내가 원하는 공부 방법은 아니었다. 물론 내 성적으로 대학원 입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괜히 한번 어딜 다녀야 개인 시간을 확보하기 편할 것 같아서 그랬는지 가장 먼저 떠오른게 학교다. 그냥 목적 없이 '하루에 한 시간 몇 시부터 몇 시까진 내 시간이야!'이라고 선언하는 건 얼마 못가 흐지부지 될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 광고 하나가 딱 눈에 띄었다. 온라인으로 수채화 배우기 강의 수업을 광고하는 것이었는데, 뭐가 끌렸던 건지 바로 신용카드 결제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매우 저렴한 수업료 세일이 매력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선생님 자기소개 동영상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내가 이걸 들으면 나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봤다.


어렸을 때 미술학원에 한 달 정도 다닌 적이 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이라 한 달 만에 그만두었지만, 난 학창 시절 내내 미술과 음악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 필요한 스케치북과, 붓, 물감을 아마존으로 주문하고 스케치북이 도착하자마자 아이들 붓과 물감으로 수업을 따라 해 봤다. 첫 수채화 그리기 수업 느낌은 대. 성. 공!이다.

벌써 왕 초보 클라스에 이제 첫 수업을 따라한 거지만, 앞으로 내가 그린 그림을 인터넷으로 파는 상상도 해 봤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의 이미지를 넣은 굿즈들을 파는 상상도 해봤다. 나도 아마존에 물건 팔기에 도전해 볼 날이 오겠군! 복권 당첨 상상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요즘 브레네 브라운의 <라이징 스트롱>을 읽고 있는데,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들어 난생처음 오늘 아침 필사도 해봤다. 내용은 이러하다.


"When we combine the courage to make clear what works for us and what doesn't with compassion to assume people are doing their best, our lives change." - from <Rising Strong>

"우리가 어떤 것들이 나에게 용납되고 어떤 것들이 나에게 용납되지 않는지 확실히 할 수 있는 용기와, 다 른 사람들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결합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바뀐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나는 앞으로 남편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상대방인 남편도 항상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할 예정이다.


취미 활동 시작하기가 단순히 수채화 배우기로 끝날 일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의 불만족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다행인 건 내가 수채화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점과 남편이 대화가 통화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 (마무리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ㅎㅎ)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