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동생 부부가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국내지만 비행기 타고 5시간 거리) 여행을 왔다. 고속도로 한 시간 반을 운전해 온 가족이 오랜만에 도시 나들이를 다녀왔다.
결혼 9개월 차 신혼부부는 아이 둘 데리고 나온 우리 부부와 비교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 만난 동생 남편분은 낯가림이 없으셔서 오랜만에 신나게 수다 떨고 왔다. 기억나는 대화는 먼 곳으로 이사 와서 좋은 점 말고, 안 좋은 점이 있다면 하나만 말해 달라고 한 부분이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 후, 단호히 대답했다. "없는 것 같아요 ㅎㅎ"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이유는, 은퇴를 했기 때문에 이곳이 아니라 토론토였더라도 우리는 좋다고 대답했을 거라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단점까진 아니지만, 이른 은퇴로 인해 강제로 엄청난 절약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라, 일할 때와는 다른 소비 결정에 간혹 아쉬울 때도 있으나, 그것 또한 소비를 위해서 회사에 나가야 한다면 그냥 돈을 안 쓰고 내 시간을 사수하는 쪽을 기쁘게 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주말은 롱 위켄드이다. 월요일이 휴일이다. 나는 오늘까지도 몰랐다. 주식시장은 어찌 되고 있나 하고 앱을 켜보려고 하는데 남편이 오늘 안 해 그런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이 토요일이구나 싶다. 그래도 앱을 켰다. 월요일도 미국과 캐나다 장은 문 닫는다고 뜬다. 아. 이번 주말이 롱 위켄드구나 했다. 회사를 안 가니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약속도 없고, 미팅도 없고, 데드라인도 없고, 목표한 실적도 없으니 달력을 안 보고 산다. 이렇게 긴장감 없이 살면 망하는 줄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우리의 은퇴계획을 주변 이웃들에게 말하면, 젊은 또래 부부는 외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그런 옵션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를 부러워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부모님 또래보다 조금 젊으신 이웃 한국 아줌마, 아저씨는 응원하다고는 하셨지만 젊잖게 말리시기도 했다.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지. 이제 회사에서 점점 더 능력을 인정받을 나이인데 아깝지 않으냐. 집에서 놀면 지루해서 안된다. 뭐라도 일을 하는 게 건강에도 좋다' 등 틈틈이 직장인의 좋은 점을 어필하셨다. 양가 부모님이 옆집에 사셨다면 비슷한 말씀을 얼굴 볼 때마다 하고도 남으셨을 거다. 이 분들은 우리보다 20살은 더 차이나지만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분들이다. 지금은 멀리 살지만,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연을 이어 가리라 확신되는 분들이다. 아무튼. 긴장감 없이 살면 망하는 줄 알았는데, 3월에 은퇴하고 6개월이 거의 다 되어가는 요즘 내 인생 어느 때보다 꽉 찬 느낌으로 살고 있다.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 없고, 무언가를 놓치고 있진 않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없고, 다만 육아만 회사 때보다 강도가 조금 쎄진것 빼곤 (비싼 데이케어를 안 보내는 중이다, 한 달에 200만 원이 넘게 들어갔었다) 좋다.
지난 한 달간 우린 새로운 실험을 했다. '카페인 끊어보기'. 원두가 떨어졌는데, 커피 대신 허브티를 샀다. 카페인 부스트를 받아서 생산능력을 올릴 필요가 없으니 매일 아침마다 습관처럼 마시던걸 끊어보자는, 역시나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나도 역시나 유연하게 '그래 해보지 뭐' 했다. 그래도 커피 기계도 팔아버리자는 의견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처음 며칠은 머리가 아팠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중인 거다. 그렇게 한 달을 살았다. 그리고 며칠 전 장 볼 때 원두를 다시 샀다. 매일은 아니지만 마시고 싶을 때 마시기로 했다. 오늘은 어제 밤10시에 잠이 들어서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6시에 식탁에 앉아서 요리책을 썼다.
지난 4년간 요리책을 내고 싶었는데 항상 여유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요리책을 이번엔 반드시 출간하겠어!라고 결심했을 때 세운 데드라인은 두 달이었다. 회사 다닐 때는 올해 안엔 꼭 해야지.. 하던 결심인데 나름 넉넉하게 시간을 줘서 두 달로 잡았다. 요리 가짓수는 21가지로 많지 않다. 한글 레시피는 끝났고, 영어로 다시 레시피 작성 중인데 이제 반 조금 넘게 했다. 하루 중 애들이 일어나기 전 새벽에 잠시, 오후에 애들이 만화 보는 시간에 또 잠시 이렇게 쫓기는 기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중이다. 그래도 10월 안에 마무리하고 아마존 킨들에 파는데 시간은 넉넉할 것 같다.
영어책을 읽다 집중력이 흐려지면, 한국어 책을 본다. 그럼 술술 아주 재밌게 읽힌다. 한국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나도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요리책을 쓰다 지루해져서, 한국어 책을 읽다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됐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조금만 쳐다보다 금방 올릴 예정이다.
'해피 롱 위켄드'이다. 여기선 휴일 낀 주말에 이런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나에겐 이제 별 의미 없지만, 나도 인사를 건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