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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가득한 숲 속 산책 끝에 마주한 사슴

퇴사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by 안개꽃

Sept 6, 2021 월


어제는 오랜만에 Mt.Thom 에 올라갔다 왔다. 그동안 엄청 힘든 코스로만 다녔었는데, 앞집 아줌마가 쉬운 루트가 있다고 알려줘서 알았다. 정상까지 애들 둘을 어르고 달래면서 씨름하면서 두 시간 걸려 올라가는 길을 20분이면 정상까지 가는 코스가 있다는 것이다! (5번 시도하면 한번 정도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20분이면 간다는 그곳을 찾아갔다. 굽이굽이 산길을 차 타고 올라가서 주차장을 만났다. 차는 한 8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제는 비가 왔다 개었다를 반복하면서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이런 좋은 길을 두고 우리가 그 고생을 했네.. 하며 산을 오르다 보니 20분 만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보채지 않고 정상까지 혼자 올라왔다는 뿌듯함에 3살 반인 둘째는 신나게 다시 산을 내려왔다.


40분 만에 왕복을 끝내고 차 타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 길 모퉁이에 서있는 사슴을 만났다. 차를 보더니 급하게 숲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차를 천천히 움직여 창문을 내리고 가까이에서 쳐다봤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슴은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나를 응시했다. 몇 초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연초에 내 꿈에 나왔던 사슴이 생각났다.


퇴사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마음고생하던 그때, 꿈속에 나와서 괜찮다고 퇴사해도 괜찮다고 원하는 인생을 살아도 된다고 싸인을 줬던 그 사슴이 생각났다.


은퇴생활 6개월에 접어들었다. 3월 26일, 퇴사 날을 전후로 그전 인생은 벌써 잘 생각이 안 난다. 틈틈이 자본 투자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사업 아이템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아닌, 한국에서 일 년 살아보기도 상상해 보면서, 삼시세끼 밥 열심히 해 먹으면서, 간간히 남편과 싸우기도 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내 꿈에 나왔던 사슴이 어제 만난 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잘하고 있다고 그 큰 눈으로 나를 위로해 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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