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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사장이 되었다

Sept 8, 2021 수

by 안개꽃

돌이켜 생각해 보니 중학생때 내 꿈은 '사장님' 이였다. 내가 성공해서 너네들 다 우리회사에 취직시켜줄께! 라고 말하곤 하던 기억이 난다.


2017년 덜컥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16평 콘도에 살다, 55평 쯤 되는 새로지은 타운하우스를 분양받아 이사갔다. 남편과 나 이제 3살 된 딸 그리고 내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 이렇게 5명이 살집을 알아보다 보니 사이즈가 커져 버렸다. 동생들이 초등학교 3학년 나이일때부터 우리가 연애를 해서 동생들과 남편은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였다.


그렇게 이사가고 등기를 마쳤을때 밀려오는 은행융자에 부담감은 막막했다. 지난번 콘도는 집값의 10% 만 다운하고 집을 샀다면, 이번에는 20% 다운하고 집을 샀다. 지역적으로 토론토 안에 전철이 다니는 곳이긴 하지만, 학군도 별로고 치안도 별로라 집값이 싼 편이였다. 아직 큰애가 3살이라 학군까지 걱정하진 않았다. '초등학교는 놀러가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에이젼트가, '그 동네를 가려고 하다니 애는 사립학교를 보낼 생각인가 보내요?' 라고 물어볼때도 '아닌데요? 여기 학교도 괜찮을 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그 곳으로 이사를 가보니, 우리랑 비슷한 가족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우리와 비슷하다고 함은, 나이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고, 연봉도 비슷하고 (자세히 알순 없지만 직업을 보고 짐작하건데..어쩔땐 같은 회사이기도 하다), 자녀 나이도 비슷하고, 이민자에다가 재산도 얼추 비슷해서 집을 사야 겠는데 더 좋은 동네는 못가는 그런 상황이였다. 500가구가 들어오는 역대급 사이즈의 단지였기에 동네 분위기가 확 달라지긴 했다. 연방정부가 가지고 있던 공원 부지를 조금 잘라서 부동산 개발 회사에 판 것이다. 토론토도 공급이 부족해서 집 값이 계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것 같다. 동네 토박이 주민들은 공원 땅을 팔아서 집 짓는걸 반대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하 (방 하나, 화장실)부터 1층 (거실, 부엌, 화장실), 2층 (방 두개, 화장실), 3층 (안방 및 화장실), 4층 (루프 탑) 으로 생긴 길~쭉한 집으로 계단이 엄청 많은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그리고 변호사와 만나 등기 및 모든 서류를 마무리 한 그날 밤,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이건 아닌것 같아..이 집 은행 융자 갚아 나가려면 회사를 계속 열심히 다녀야 할거고 다른 사업을 도전해 본다던가 하는 일은 할 수 없을거야..이렇게 사는게 맞는걸까? 우리 잘 한걸까?' 이런 대화를 했다. 그러다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그러지 말고 우리 이 집 그냥 팔고, 다시 작은 콘도로 가서 은행빚은 집중해서 갚아 나가자. 아니면 우리 그냥 아파트 월세살고 하고싶은 일에 도전해 보자'이렇게 대화가 진행되었다.


굉장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건 아니였다. 다만 신혼 초 부터 이상하게 남편과 사업 아이디어를 상상해 보면서 노는걸 좋아했다. 다음은 우리의 지나간 실현시키지 못한 사업 아이디어 들이다.


1. 건강 도시락 배달 사업: 남편은 토론토 다운타운에 모든 금융회사 본사가 집결해 있는 곳으로 직장을 다녔다. 그곳에 몇년 일해보니 사람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엄청 괴로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패스트푸드가 즐비해 있는 푸드코트에 줄을 어마어마하게 서서 점심을 먹고 나면 죄책감이 따라오는 거다. '아..오늘도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구나..아..내 다이어트는 또 물건너 갔구나..등'

우린 그래서 건강한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 주는 사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앱을 만들고, 회원제를 도입해서 일주일에 몇번 또는 한달에 몇번 도시락을 사먹을수 있는 스템을 만들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서 도시락을 고르면 점심시간에 맞춰 빌딩 로비로 배달을 가는거다. 마침 시부모님이 샌드위치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면 될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식당 부엌도 해결되고, 온갖 정부의 음식 비지니스 셋업 관련 검사도 해결되고, 배달이기 때문에 가게 렌트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니 배달 차만 있으면 될것 같았다. 결혼하고 처음 떠난 여행지에서 이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우리는 흥분해서 몇일을 어떻게 하면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남편이 부모님께 손 편지를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집을 팔아서 (그때는 16평 콘도에 살때다) 빚을 최소화 한후 남는 돈으로 큰 사업용 차를 사는것으로 계획은 시작한다. 물론 둘다 회사를 그만두는것도 포함이다.

우리의 첫번째 사업아이디어는 부모님의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라는 반대와 함께 서서히 사그러 들었다.


2. 요가 스튜디오 오픈: 남편은 회사에서 얻은 우울증을 돌파하려 요가와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점점 더 열심히 하더니, (다행히 우울증은 사라졌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우리의 두번째 사업 아이디어인 요가 스튜디오 열기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이때는 타운하우스로 이사온 후이다. 우리집 기준 전방 몇 키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요가 스튜디오를 갔다. 나름 효율적으로 한다고 남편과 내가 따로따로 다녀봤다. 각자 도장깨기를 하고 온 날이면, 요가 스튜디오 도면을 그리면서 그 학원에 대해 서로 설명해 주고 장점과 단점을 교환했다. 역시나 우리에게 자산는 집밖에 없으므로, 집을 팔아서 목돈을 마련한 후, 어느 목 좋은 곳에 그럴듯한 요가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싶었다. 래서 상가 부동산 에이전트 들에게 연락을 해서 월세를 알아보고, 자리도 못 구했으면서 인테리어 업자와 미팅을 해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우리에게 전 재산을 걸고 사업을 시작할 배짱은 아직도 없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치고 난 후, 남편이 다니던 요가 스튜디오들이 하나 둘 문닫기 시작하자 우리가 그때 요가 사업을 하지 않은건 참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3. 크림치즈 사업: 이번엔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 졌다! 매번 얻어먹는 시어머님 표, 말린 크렌베리와 호두가 듬뿍 들어간 크림치즈는 정말 맛있었다. 베이글에 발라 먹거나 크레커에 발라먹으면 맥주나 와인 안주로도 훌륭했다. 어느 연말에 지인들에게 선물로 한통씩 돌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혹시 돈주고 살 순 없는지 물어오는 상황이 되자, 우리는 어머님께 레시피를 전수받아 상품을 개발하기로 한다. 우선 어머님는 계량된 레시피가 없었으므로, 그것부터 여러번에 시도를 걸쳐 적절한 재료가 알맞게 들어간 레시피를 개발했다. 우리집엔 없던 믹서를 사고, 블렌더를 사고, 엄청난 크림치즈를 샀다. 마침 우리가 이 사업을 벌릴때 난 둘째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삭 이였고 (그때 요리책 낸다고 요리를 엄청 했던 그때이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6주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우린 임신 막달에 새로운 사업에 꼿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엔 로고 디자인을 남편이 했다가, 전문가에게 맡겼다. 크림치즈 담을 용기를 사러 홀세일 샾에 드나들었다. 좀더 가내수공업 느낌이 덜 나는 포장으로 마루리 하고 싶어 중국 알리바바 사이트에서 포장기계도 열심히 뒤져봤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추가하고, 인스타와 패북도 열었다. 사업자 등록도 하고, 보험에도 가입했다. 무엇보다 남편과 내가 각각 식당주인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식 위생 자격증? Food handling Certificate' 이라는 정부 자격증도 시험봐서 땄다. 그리고 대학교 내에 있는 음식성분 분석 랩에 요청해서 우리의 크림치즈 성분 분석 표도 만들었다. 대형 수퍼마켓에 샘플을 들고 찾아가 우리 크림치즈를 홍보하기도 하고, 300개의 샘플을 만들어 남편이 쿨러백에 넣어 토론토 다운타운 지하철 역에서 나눠주다 시큐리티한테 쫓겨나기도 했다. 그때 300개 샘플을 만든다고 새벽까지 고생하던 기억이 있다. 두군데 수퍼에서 시식행사를 할때는 알바생을 고용해서 일을 했고, 로고가 프린트된 티셔츠도 입었고, 홍보 포스터는 내가 이제 막 태어난 둘째를 신생아 카시트에 들춰메고 프린트 샵을 엄청 들락다락 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 크림시즈 사업을 시도할때 우린 둘다 멀쩡한 직장에 잘 다니는 중이였다. 물론 둘째가 태어남으로써 남편은 6주가 생겼고 나는 10개월 쉬었지만, 번듯한 은행에 매우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으며 다니는 와중에 이렇게 계속 우리 사업이 하고 싶어 시도해 보는 나날 이였다.

이 사업은 6개월 정도 있다 끝이 났다. 남편은 6주 육아 휴직후 회사로 돌아갔는데, 주말에도 쉬지않고 일하기를 몇달이 지속되자 아무래도 이 크림치즈 사업으로 우리가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성공하긴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차츰 시들해지면서 결국 그만하자 라고 결론짓게 됬다.


https://brunch.co.kr/@jennifer008/34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있었던건 이 크림치즈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업과 폐업 (세금보고도 했다)을 경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셀프로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걸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사업을 하고 있어서 회사를 둘다 동시에 그만두고 사는지에 관해서 다음 글에 좀 더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보니 남편과 나는 부부이자 사업 파트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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