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Bali, 발리니까

프롤로그

by JenniferC

오래전 우연히 본 영화 탓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봤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했던 영화로, 여주인공은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부터 자신이 바라던 삶이 아님을 깨닫는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긴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는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몸 건강을 챙기고 인도에서는 기도하면서 마음 건강을 챙긴다.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 우붓에서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스토리이다. 영화에서 본 우붓의 모습은 열대 야자수와 계단 논 풍경이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에 끌렸다.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발리, 정확하게 말하면 발리에 있는 우붓이라는 마을에 가보고 싶어졌다.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났다. 영화를 봤던 강남역 시티극장이 사라졌으니 10년도 훌쩍 지난 것 같다. 늘 일에 파묻혀 살던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다. 그냥 좀 쉬고 싶어졌다.
계획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살던 집 앞마당에 있던 포도나무에 포도송이 100개 정도가 한꺼번에 익어버린다. 포도나무 밑에서 저 많은 포도를 어떻게 하지? 그냥 멍하게 쳐다보았던 그때의 나처럼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게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발리가 떠올랐다.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지. 그래 가보자.’ 항공권을 구매하고 여름옷을 따로 보관해 두었던 상자를 꺼내서 한여름 옷과 수영복을 챙겨서 발리로 떠났다.

발리 공항에 도착해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습한 더운 공기가 내 기관지 틀 통해 내 몸 구석구석으로 들어오는 순간, 묘한 쾌감이 들면서 ‘아.. 늘 막연히 꿈꾸던 발리에 드디어 왔구나.’
그렇게 발리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고 오래전 보았던 영화 속의 배경인 우붓이라는 마을에서 열흘을 보냈다. 영화 주인공처럼 여행이 다 끝날 즈음엔 나도 내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찾게 될 줄 알았다. 여주인공처럼 우붓에서 열흘을 보냈지만 인생 나침반은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우붓에 머무르면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 내가 느꼈던 것을 간단하게 메모해 둔 노트를 훑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나 수영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책 읽고 산책하고. 내일 무엇을 할까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마음 흘러가는 대로 지냈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우붓에서의 열흘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인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이런 시간이 나에게 있었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늘누가 나를 쫓아오는 것처럼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무슨 맛인지 모르면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넣는 것처럼 말이다. 우붓에서의 보낸 시간은 화려하지 않지만 맛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먹는 기분 좋은 저녁식사 시간 같았다.

첫 발리 여행을 마친 후에 조금만 긴 시간이 허락되면 난 발리를 다녀왔다.
첫 발리 여행은 열흘, 두 번째 여행은 한 달, 세 번째 여행은 2주.
발리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여행지이다.

늘 발리에선 삶의 기로에서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나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면서 보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아닌 ‘먹고 마시고 그리고 운동하라’로 나에게 집중하면서 말이다.

발리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나에게 집중하는 곳. 나에게 귀 기울이고 나를 돌보는 곳.
다시 시간이 허락하면 난 다시 또 발리를 갈 것이다. 내 삶의 중심인 나를 위해 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왜냐하면 발리니까... It’s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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