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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프터글로우 Feb 17. 2024

직장인 이야기 : 알리바바의 한국 방문

추운 겨울 한파와 한국식 독주를 맛본 중국 사람들

얼마 전, 서울에 한파가 온 날이었다.

한 3일 동안 영하 20도에 달하는 추위가 이어졌고, 휴대폰은 한파 경보가 계속 울렸다. 

이 무렵, 우리와 함께 업무하고 있는 파트너인 알리바바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알리바바는 중국 항저우에 회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한국에 비해 훨씬 덥고 습한 지역이다. 

그래서 한국이 영하 20도일 때 거기는 최저 기온이 영하 2도라고 했다. 

정말 온도차가 극과 극인데, 마치 우리의 관계와도 같은 것인가.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항상 온도차는 존재했다.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도 발생하기 마련이고, 업무를 대하는 생각도 동상이몽이기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여기서 다시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온라인 면세점을 기반으로 중국 대형 플랫폼에 몰(mall)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몰을 구축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을 알리바바가 진행한다. 

우리는 초기에 이 몰을 구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일단 법적인 리스크가 없는지 파악하고,

한국 면세점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연동하는 개발을 해야 했고,

양사 개발자들이 붙어 업무를 진행했다. 


우리는 앞단의 법적인 리스크 파악하는 데에만 몇 달이 걸렸다. 

사실 실무자로서 많이 답답했다. 

회사가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리스크 파악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이것 때문에 너무 시간이 많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우리 팀장님의 전략 아닌 전략이기도 했다.

그 당시 아직 코로나가 풀리지 않았고, 

따라서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이 업무에 많이 집중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새로 구축될 몰은 제휴를 통한 기존 자사몰의 연장선일 뿐,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 팀장님은 시작은 본인이 맡으되, 나중에는 본인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의 승진 실패로 다시 부메랑이 되어 이제 온전히 그가 맡게 되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1년이 넘게 흘러가서야 본격적으로 개발이 착수가 되었다. 

알리바바 입장에서는 2년 동안 흐지부지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 내부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input은 많았으나 output이 없어 위험에 처한 프로젝트라고 인식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점점 알리바바 측에서는 이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사람도 줄고 예산도 없앴다. 


근데 이제 우리가 뒷북을 치기 시작한 거다. 

작년부터 우리는 내부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광 팔기 시작했고,

윗분들이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빨리 몰을 오픈해서 매출과 성과를 내라는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이땐 알리바바에서는 이미 이 프로젝트에 마음이 뜬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 내가 승진을 했다. 

내 영혼과 몸을 갈아 넣어 어찌어찌 몰을 오픈하게 되었고

여러 번 출장 끝에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어필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커졌고, 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자 키맨(key man)이 되었다. 

누구는 부러워할 수도 있을 거다. 

어쨌거나 노력을 인정받아 보상을 받게 되었으니.

하지만 난 착잡했다. 

왜냐면 이미 앞선 2년 동안 어그러진 그들과의 타이밍, 그리고 현재 남겨진 좋지 않은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업무를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난 이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타이밍은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타이밍이 상대방이 생각한 타이밍과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만 밀고 나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리고 초기에 사업의 사이즈를 잘 파악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사업 모델은 너무 좋고 이상적일 수 있지만,

나는 우리 회사가 이 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조직과 능력이 없다고 느낀 적들이 많다. 

너무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일들을 감당하는 리더 몇몇이 일을 추진하고, 그 아래 또 몇 없는 사원들을 병정들처럼 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근데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측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기반이 튼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초기에 성과가 없다고 바로 매몰차게 예산을 줄이고 인원을 줄이는 게, 현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희망이 이제 좀 보이는데 바로 쉽게 놓아버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알리바바에서 출장을 왔다.

저녁 6시 압구정로데오쪽에 있는 한 한식당에서 1차 회식을 갖게 되었다. 

상무님들, 팀장님, 파트장님, 후배와 함께 식당에서 기다렸다. 

마침 이동하는 시간이 퇴근시간이었고, 알리바바는 한국이 퇴근 시간 때 이렇게까지 차가 막힐 줄 몰랐던 것인지.

30분이나 늦게 도착을 했다. 

거듭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출장을 가면 항상 내가 혼자 모든 대화를 통역했었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목이 너무 건조해져 말을 못 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통역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다 보니, 너무 피곤해지면 정신력을 잃어 앞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후배가 있어서 통역을 반반 나누어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어색한 1차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2차로 노래방 기계가 있는 파티룸까지 가게 되었다. 

1차에서는 소맥을 엄청 마시고, 2차는 샴페인에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 

우리 상무님은 알리바바를 단단히 취하게 만드실 생각이셨던 게 분명하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점수 대결을 하면서, 점수가 낮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임을 하고...

돌아가면서 한번씩 노래를 안 하면 집에 못 가게 될 것 같은 상황에,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많이 취했다. 

나는 통역을 해야 하기도 하고, 원래 주량이 약한 걸 아시다 보니 많이 안 마셨지만,

그날 취한 사람들의 혀 꼬인 말들과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데 계속 통역을 이어나가는데, 왠지 모르게 멀리서 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되게 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란 원래 이런 것이겠지?

그날 우리가 한 접대는 상대방이 원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만,

우리 회사는 당신들을 매우 환영하고 앞으로도 잘해보자 라는 의미는 와닿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이런 영업이나 제휴와 같은 업무를 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네트워킹을 구축하기 위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고유의 성향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영업과 접대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천성으로 그래도 이런 업무를 하는 와중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날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가면을 쓴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즐겁진 않았어도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반면 진심이 아닌 말을 하는 게 점점 더 어렵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닌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만 소속감이 아닌 오히려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남들이 나를 따돌려서가 아니라 이건 그냥 내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난 이 날, 앞으로 내가 여기에 오래 못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일단 난 이 알리바바와 하는 업무에 애착이 생겼다. 

내가 처음부터 같이 한 일이고, 나름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앞으로 현재 상황을 뒤엎을 수 있을 법한 반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보다도 이 사업이 잘돼서, 반대로 내가 광을 팔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알리바바의 이번 출장이 앞으로의 우리 사업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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