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첫 사회생활 수년을 스타트업 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서 일까. 스타트업은 아직도 말만 들어도 가슴설레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고, 오만가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는 단어이다.
얼마전 “왜 자꾸 스타트업에 뛰어드냐”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무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한참을 듣다가 내가 끼어들었다. “꿈과 환상에 대한 중독이죠.” 비록 말은 다소 냉소적으로 툭 내뱉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스타트업에 계속 뛰어드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대변의 말이었다.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 시켜 나가면서 뜻을 함께하는 팀원을 모으고, 그것이 잘 될거라 믿어주는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때로는 으쌰으쌰 잘될거라는 낭만에 흠뻑 젖고, 때로는 지독한 좌절감에 팀원 모두 절망의 나락을 맛보는, 그러다 정말 천운이 따르면 대박도 칠 수 있는, 그 다이내믹한 몰입감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가.
스몰비지니스와 스타트업의 차이에 대한 화두에 대해 얼마전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과 사기꾼의 한끗 차이에 대한 대화도 나누었다. 사실 그 차이에 대해 사업을 이끌어 가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판단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고, 뭐가 됐든, 실행해 가며 증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비웃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신념,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의 아이디어나 사업이 제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비웃지 않을 수 있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하단 생각이다.
껍데기가 초라해서 주눅이 드는 때가 있다. 하지만 껍데기가 화려하던 시절, 그 모든 갑옷을 벗어던지고 야생으로 나와 정글의 법칙에서 한번 승부해 보겠다고 떠나왔던 패기를 잊지 않는다. 다행히 요즘은 근자감으로 정신승리를 이루어낸건지, 스스로에 대한 신념이 꽤나 공고해진 느낌이다. 실속없던 나에게, 실속 무지하게 챙기는 딸래미가 나타나서 내 생각을 많이 바꿔준 것도 한 몫한다. 아주 고마운 일.
어제 스타트업 이벤트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오랜만에 느낀 스타트업의 열기, 열정,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젊은 사람도 많았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어도 그들의 회사는 젊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법적인 인격체(법인)의 삶의 주기로 본다면 그 신생의 발딱거리는 에너지와 젊음의 맥락을 함께한다. 잃을 게 없는 제로의 상태로 시작하는 그 다부진 마음들.
좋은 에너지 많이 받고 왔다. 그들을 응원하고, 더불어 나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초대해준 대니에게 심심한 감사를.
덧) 글을 쓰고 나서, ‘배운게 도둑질’이란 표현을 적절하게 쓴 것인지 확인 차 인터넷 검색을 하니, 자신의 직업을 비하하는 자격지심의 말이라는 아주 맹렬한 비난조의 블로그 글이 세개나 검색 상위페이지에 주루룩 뜬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닌데.. 그냥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첫단추라는 의미로 쓴 것이나 더 적절한 표현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수정없이 올리기로… 사실 첫 사회생활을 우연히 스타트업에서 한건지,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간건지에 대해서는 후자쪽이라 생각하지만.. 암튼 논지가 흐트러지므로 이쯤에서 배운게 도둑질에 대한 짧은 고찰은 끝.
- 2019년 9월 26일, 스타트업 행사에 다녀온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