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젠 Feb 25. 2021

우아하게 (Graceful) 퇴사하기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
직장인이면 퇴사를 고려하는 시기가 오는데, 나의 경우 회사의 목표와 내 개인목표의 alignment 가 깨지고 간극이 커지는 시점이 그것이었다.

퇴사의 결심이 서면 고민이 몰려온다.  어떻게 퇴사하여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상사, 동료와의 프로페셔널한 관계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하고자 노력한다.


스타트업의 초기멤버로서 한동안 삶을 온전히 회사에 바쳤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회사를 나오는 일련의 과정들이 퇴사라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친구 혹은 연인과의 헤어짐과 그 느낌이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 초기멤버로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아니면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하루 8시간 씩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상사와 직원, 혹은 사원과 사원의 사무적인 관계를 너머, 지지고 볶고 진흙탕에서 뒹굴다 환희에 부둥켜 안고 함께 울다, 진정한 전우애와 동지애를 가지게 되는 그런 형언하기 어려운 뒤범벅의 파트너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전반적인 느낌을 하나로 아우르는 단어를 굳이 꼽자면, “특별함”이다. (좋건 싫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흥분과 기대, 그리고 긴장의 상황에서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이유 만으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된다.

그래서 퇴사에 대한 논의가 더욱더 조심스러웠고, 더욱더 퍼스널했다.
흔히 일터에서의 일들을 가리켜 Don’t take it personally. 라며 입찬 조언을 하는데, 흠, 글쎄.. 프로페셔널과 퍼스널의 경계.. 그걸 정확하게 분리하는게 쉽지 않았던 게 당시의 내 삶이었던 것 같다.
At the end of the day, it’s all personal.


우아하게 퇴사를 했는지 아닌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여차저차 퇴사를 하고 나는 내 삶을 move on 하였는데,
가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퇴사과정이 너무 세련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이따금씩 이불킥 한두번쯤은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래도 내가 결과적으로 우아하게 퇴사하는데 꽤나 성공한건지 뭔지.
전 상사와 동료들이 아직도 reach out 을 해주고,
언제든지 돌아와라, 네 자리는 있다고 예의상으로라도 해주는 말들을 보며
내가 아주 개차반은 아니었었나 싶은 생각에 안도감도 들고 그렇다.


그래서... 우아한 퇴사는 어떻게 하는건데?

이제는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사람을 채용하고, 퇴사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세련되고 우아하게 퇴사하는 법이 이거다, 라고 아직도 한마디로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다.
다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퇴사멘트 템플릿을 그대로 재생하는 듯한 
형식적이고 “세련된” 퇴사 보다는,
조금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상황, 입장, 생각, 계획 등을 솔직하게 공유해 주며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퇴사
그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우아한 퇴사인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건승을 빌어줄 수 있는 관계로 마무리 지을 수만 있다면
최고로 잘한 퇴사 아닐까.


종종 컨퍼런스나 여러가지 추억거리가 떠오르는 시기에 맞추어 메세지로 그때의 추억을 농담처럼 사진과 함께 보내주기도 하고,
업계 동향이나 경쟁사에 대한 내 생각을 아직도 물어봐 주는 상사와 동료들..
계속 연락해주며 내 과거가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 들지 않게 해주어 진심으로 고맙다.

나의 퇴사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서로의 성공을 빌어주고, 다시 찾아줄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우아함은 있었었나보다.

작가의 이전글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