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쏘울메이트를 위한 안내서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근데 하기 시작하면 난리날 거란 자신감 같은 게 있다.
한번도 요리를 배워본적 없고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지만 요리잘하는 울 엄마 밑에서 보고 배운것이 있는지라 왠지 기본이상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물론 모든지 대충대충 대강대강 하려는 태도가 요리에도 적용돼 예쁜 플레이팅과는 거리가 멀겠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건 도전하지 못하겠지만.
몇번인가, 그는 내게 달걀 조림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매번 그의 말을 흘려 들었다. 언제 그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나 싶고 당시엔 진짜 늘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지고 나서 못해준 많은 것들 중 그게 젤 속상한 거다. 그래서 일단 만들어 보기로 했다. 녀석이 받아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어렵사리 우여곡절 끝에 뚝딱 완성. '근데 이걸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나' 하는 실질적 고민이 생겼다. 어쩌면 이것마저 그를 위해서라는 명목의 내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왕지사 만들었으니 그의 집으로 배달을 가기로 결심했다. 회한과 정성으로 만든 이 장조림이 부디 그의 상하고 닫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결과는?
소고기 메추리알 장조림
1. 메추리알을 식초 한 큰술을 넣어 삶는다.
2. 소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30분 동안)_ 핏물빼는 걸 깜빡하고 바로 삶기 시작;
3. 소고기를 대파, 마늘, 청양고추, 통후추를 넣고 삶는다_통후추가 없어 그냥 후추를;;
4. 메추리알을 찬물에 담가놓았다_깐 걸 샀으면 편했겠지만 정성스레 직접 까고 싶었다.
5. 간장한컵 설탕4큰술 맛술한컵 청주한작은술 넣어 장조림 양념장을 만든다_맛술이 뭐지?;; 맛술이 없어서 못넣었다. 청주도 없어서 소주 한 작은술을 넣었다. 나 제대로 가고 있는걸까? 실수 작렬!
6. 냄비에 삶은 소고기와 양념장 그리고 소고기 삶은 육수 3컵을 넣고 끓인다.
7. 국물이 졸아들고 소고기에 간이 베면 메추리알을 넣는다.
역시 생애 최초로 만들어 본 <오뎅볶음>
1. 대파와 마늘을 어슷썬다.
2. 어묵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끓는 물에 30초 정도 데친다.
3. 펜에 포도씨유 한큰술 넣고 대파와 다진마늘 고춧가루 한 작은술을 넣는다.
4. 데쳐낸 어묵을 30초~1분정도 볶아준다.
5. 설탕 반큰술을 먼저 넣고 맛술을 넣는다-역시맛술이 없다...;;6. 다시마 육수 2~3큰술을 넣은뒤 바로 간장 1작은술을 넣어준다_다시마 없음ㅠ7. 후추가루 통깨 술술 뿌려준다_통깨가 없어서 후추가루 약간
도시락 폭탄을 투척한 그날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처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다시 콜백을 할 수가 없어 망설이다 자정이 되었다. 그때 그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왔다.
“이러지마”
그리고는 끝이었다.
더이상 나도 그에게 연락할 명분이 없었고 그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타이밍이 지난 도시락은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집앞으로 나를 만나러 온 그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그때, 내가 만든 도시락.....있잖아. 그거, 버렸지?”
(아니)
그럼?
(먹었어)
???
(그걸 어떻게 버려...)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나는 그가, 단박에, 그걸 쓰레기통에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화를 냈을 것 같았는데, 그는 도시락을 버리지 않았고, 심지어 그것을 다 먹었다. 내 생각이 또 틀렸다. 그의 성향을 더 잘 알았다면 결론이 좀 달랐을까.
우리는 그렇게 진짜로 헤어졌다.
>> 벌써 십년 전 일이다. 브런치 주제가 한식이라 생각나서 오래된 글 꺼내 끄적여봤다. 요즘은 웬만하면 십년 전 이야기다, 휴.